[권은경] 과학, 경제,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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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노동신문에 ‘당의 새로운 전략적 로선관철에서 나서는 중요한 요구’라는 글이 실렸는데요. 북한의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후보원사 교수인 리기성 박사의 기고문입니다. 리 박사는 이 글에서 경제구조 개선조치를 제안하며 첨단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마침 11월 10일이 ‘평화와 발전을 위한 세계과학의 날’이라 리 박사의 기고문을 더욱 의미 깊게 들여다 봤습니다.

리기성 박사는 당중앙위원회 제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 대진군을 이루기 위해 자립적이고 현대적이며 강력한 사회주의 경제와 지식경제를 건설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 글에서는 지속적으로 자립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북한의 첨단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정보기술, 나노기술, 생물공학을 비롯한 첨단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경제발전에서 지식산업과 첨단기술산업의 비중과 중추적 역할을 체계적으로 높이며” 이를 바탕으로 “새 세기 경제구조를 확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구조를 짜야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노동신문의 글이 다 그렇듯이 구체적인 개선 방식이나 새로운 경제구조를 제안하지는 않습니다만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원론적인 차원에서 소개했습니다. 이를 위한 기본요구로 “생산과 관리를 객관적 경제법칙과 현대 과학기술의 요구에 맞게 하여 최대한의 실리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으로 “기업체들이 부여된 경영권한을 활용하여 경영관리를 개선할수 있게 경제적, 법률적 조건과 환경을 합리적으로 보장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북한당국이 2014년부터 도입하고 있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설명하며 이를 위한 법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으로 보이는데요.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법치사회가 되어야하며 따라서 개인재산권에 대한 상호 신뢰가 구축되지 않으면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주장에 그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컨대, 자율적으로 사업을 해서 먹고 살만한 돈을 벌었는데 어떤 정치적인 이유로 개인 재산이 몰수되거나 가족과 함께 추방당할 위험성이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라면 경제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얼마 전에도 성진제강연합기업소 당위원회가 철강생산에서 계획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술발전 부기사장을 철직하고 가족과 무산광산으로 추방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유는 대북제재로 인해 철광 원자재가 모자랐기 때문인데 누군가 정치적인 희생이 필요했으므로 권력과 인맥이 없는 부기사장을 철직했다는 겁니다. 이런 방식은 인권유린이면서 법치와도 거리가 먼 관행이고 심지어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의 관리 방식에도 어긋나는 비경제적이며 불합리한 사건입니다.

과학은 논리와 합리성에 기초한 학문으로 신뢰와 법치에 따라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시장경제를 만났을 때 주민들의 삶에 향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영역에서 합리성과 과학적 사고가 전파되며 인권개선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기에 리기성 박사가 과학기술과 경제 개선을 이야기 한 것이 혁신적으로 보였습니다만 여기에 빠진 것이 있습니다. 자유롭게 과학을 연구 할 수 있는 제도와 분위기입니다. 세계인권선언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과학자들이 과학연구 및 창조적 활동에 필요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하며 이들의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에게 더 많은 자율권을 주어서 창조적인 연구활동이 가능해야 리 박사가 말한 혁신이 실현될 겁니다. 특히 리 박사는 “인민경제의 현대화, 정보화를 전제로 하며 경제전반을 재정비하고 활성화”할 것을 주장하지만 현대화와 정보화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세계와 소통해야만 실현 가능합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공유 없이 현대사회의 과학발전을 꿈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리기성 박사의 글에서도 정보와 첨단과학을 언급하지만 우리식 창발성의 토대로 우리식의 과학과 경제발전만을 논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북한의 현실 또한 같은 모순에 빠져있는 듯 보입니다. 과학의 발전이나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개발도 지금까지의 인류역사가 축척해서 공유하고 있는 과학에 기초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모방하고 창조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과학과 경제 발전 그리고 인권개선을 위해서도 개혁과 개방을 앞당겨야 합니다.

유엔은 세계과학의 날에 국제사회가 이뤄야 할 목표를 제안했는데요. 그 중 ‘모든 국가들이 과학을 공유하기 위해 국제적 연대를 도모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이 국제적인 연대에 북한도 동참하기를 기대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