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닫힌 세계와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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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은 유엔이 지정해서 기념하는 ‘세계 라디오의 날’입니다. 오늘 이 말씀도 라디오를 통해서 전달해 드리고 있기에 라디오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날이 더 특별한데요. 하지만 라디오가 뭐라고 기념일까지 정하는가 의문을 제기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유엔은 ‘세계 라디오의 날’을 지정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라디오는 인류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민주적 담론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이며, 그런 이유로 현재까지도 널리 애용되는 매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랍니다. 또 라디오는 비용이 저렴하기에 산골 지역 사람들이나 취약계층도, 그리고 교육 수준이 높든 낮든 상관 없이 누구나 쉽게 접하고,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매체이기에 언론의 자유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날 노동신문은 6면에 ‘서방이 제창하는 언론의 자유는 기만이다’라는 주장 글 하나를 실었습니다. 미국 등 서방세계가 ‘언론의 자유’를 주창하지만, 그건 ‘자본주의 반동통치, 반인민적인 독재통치를 미화하는 궤변’이라는 주장인데요. 그 이유는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언론기관을 다 장악해서 미국 정치 지도자들과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근로대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 발전을 가로막고’ 여론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 글의 핵심 내용입니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 결과를 그 근거로 제시했는데요. ‘응답자의 과반수가 언론보도가 정치적으로 편견적이라고 평했다’며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이 ‘객관적이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전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설명합니다. 또 미국 등 서방 나라들의 언론이 정보를 조작해 ‘인간을 노예화하고’ ‘사회적, 국제적 혼란을 초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사례는 역설적이게도 유엔이 ‘세계 라디오의 날’을 지정한 이유와 가치와 상동합니다.

노동신문이 소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해석해 보면, 여론조사 응답자 과반수는 미국의 언론보도가 객관적이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는 뜻이고요. 넓게 보면 이 말은 미국인 절반은 ‘자본주의 반동 통치배’들의 ‘하수인’이 된 소수의 억만장자 언론들이 알려주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주적 인간’으로 ‘자주의식’을 가지고 정보를 비판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라디오 등 언론 매체들이 국가통치자, 한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부류의 의견들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신문의 주장처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루퍼트 머독’이라는 세계적 갑부가 소유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 더 많은 독립적인 언론매체들이 존재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미국에는 라디오 방송국만 1만 5천 개가 넘고요. 이 방송국들이 소유한 AM과 FM 통로는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미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러시아도 1만 개 방송국이 있고 쿠바는 6백 개 이상의 라디오 방송국이 있습니다. 라오스는 40개, 미얀마는 50개가 좀 넘는 라디오 방송국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은 전 세계가 인터넷을 물처럼 쓰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안방에 앉아서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개인이 방송사가 될 수 있는 시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설령 억만장자 언론 재벌이 ‘자본주의 반동 통치배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더라도 이에 반대되는 다양한 의견과 다른 목소리도 충분히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인구의 절반은 주요 거대 언론 매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판단력이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언론을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은 언론의 자유와 정보 유통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들의 당연한 사회 현상입니다.

북한은 라디오 방송국이 몇 개인가요?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조선의 소리방송 등이 있다고 합니다만, 대게는 북한 주민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대외 체제 선전용이란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북한의 라디오 통로 관리 현황을 잘 보여주는데요. 제17조는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은 TV, 라디오 통로를 고정하지 않거나 고정해 놓은 것을 해제하여 불순출판 선전물을 시청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류포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다시 말해, 북한 주민들이 소유한 라디오는 통로를 하나에 고정해 두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을 해제하면 처벌받는다고 법으로 명시했습니다.

라디오 통로를 북한 주민들에게는 하나로만 고정해 두고,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지휘만 따르는 북한의 언론이 ‘반인민적 독재 통치의 대변자’일까요, 아니면 수만 개의 라디오 통로로 전 세계의 소식을 다 전달하는 미국과 서방세계의 언론이 ‘반인민적 독재 통치의 대변자’일까요? 세계 라디오의 날을 맞이하여, 북한의 청취자분들도 더 많은 라디오 방송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속히 주어지길 희망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