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세계 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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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5일,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모로코의 마라케시라는 도시에서 역사적인 선언이 하나 채택됩니다. ‘마라케시 선언’인데요. 세계의 124개 나라의 정부와 유럽경제공동체가 서명한 이 선언으로 지구는 본격적으로 국제화 또는 세계화라는 개념을 경제 영역에서 더 널리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부르는 국제협정을 체결한 겁니다. 그 전까지는 ‘가트’라고 알려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 하에서 무역에서 관세를 높게 책정해서 다른 나라의 상품 가격을 높여서 자국 제품을 보호하는 차별적인 정책을 써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처럼 경제발전에서 후발 주자이자인 개발도상에 있던 나라들이 가트체제 하의 관세 장벽의 보호에서 이득을 많이 봤습니다. 1970-1980년대를 거치며 한국이 수출에 기대 외국의 좋은 제품들과 경쟁에서 한국을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관세 장벽으로 특정 나라를 보호하는 무역체제가 아니라 모든 나라들이 상호간 관세를 일괄 낮춰서 무역에서 더 자유롭게 국가간 경쟁하는 체제로 가자고 한 것입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동유럽 사회주의 블록이 해체되고 냉전에서 벗어나 더 이상 이념 대립이 사라지게 됐습니다. 이념에 따라 두 개의 덩어리로 나눠져 경쟁하던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주체로서 국가들은 각자가 알아서 살아나가야 하는 다각화된 세계가 된 것입니다. 그런 바탕에서 자유무역 체제가 도입됐는데요.

이렇게 되자 한국같이 관세장벽의 보호를 받던 나라들이 난감해 졌습니다. 특히 한국의 농민들이 엄청난 위기감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땅덩어리가 넓어서 농사를 대량으로 지을 수 있는 나라들이나 날씨가 사계절 내내 좋아서 쌀농사를 무한대로 지을 수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 나라들과 같은 조건으로 농업 경쟁을 하자니 질 것이 뻔했습니다. 그 때문에 1990년대 초 한국은 또 한번 시끄러운 정국을 맞이해야 됐습니다. 1987년의 민주화 항쟁 이후 사회가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거리는 또 다시 시위대로 가득 찼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를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 때문이었습니다. 농가소득의 40%를 차지하는 쌀시장을 세계에 개방하는 것은 농민들의 생명줄을 끊는 것이라며 수 천 명의 농민들이 거리로 뛰어 나왔습니다.

농민들은 농업시장의 개방을 전면적으로 거부했지만 한국정부는 10년 유예를 거쳐서 관세를 낮추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협상을 타결하고 우루과이라운드에 서명했습니다. 당시 1993년부터 시작한 김영삼 정부는 이미 새로운 세계의 무역질서를 염두에 두고 ‘신경제’ 계획을 세우고 세계라는

1994년 농민들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고 걱정했던 한국의 농업은 세계와 자유 경쟁 속에서 어떻게 됐습니까? 한국의 통계청 자료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1990년 한국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세대 수는 170만 세대였는데, 2019년에는 1백만 세대로 대폭 줄었습니다. 하지만, 농가소득은 1990년에 1천 1백만 원이 조금 넘었는데 2019년에는 4천 1백 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달러로는 3만 7천 3백 달러가 넘습니다. 농가소득 면에서 1990년에 비해 2000년에는 1천 2백만 원 더 올라 10년만에 소득이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세계 농업시장에서 자율 경쟁을 하다보니 더 나은 농작물을 생산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농업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유전학과 생명공학 등 과학의 힘을 빌고, 또 인공지능으로 종합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농사 환경 자체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는데요. 첨단 과학 시설물을 도입해 공기 속의 습도는 물론이고 이산화탄소의 양까지 조절하고 또 토양의 자료도 분석해서 질 좋은 농산물을 재배한다는데요. 이런 방식으로 농작물의 맛까지 예측하며 만들어 나가는 최첨단의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세계화의 결과입니다.

북한은 지난 세포비서대회를 마치며 김정은 위원장이 ‘고난의 행군'을 결정했다고 발표하여, 남한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는데요. 북한 땅에서 한 발도 벗어 나지 못하면서 주민들에게만 ‘고난의 행군'을 강요해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엄혹한 세계의 자유무역의 경쟁 속에서도 한국의 척박한 농사가 살아 남았던 것처럼 세계와 함께 손을 잡아도 북한주민들도 그리고 북한의 경제도 무사히 살아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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