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 제 10차 대회의 막을 내렸습니다. 북한은 10차대회 결정서를 통해 청년동맹의 명칭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개칭했다고 밝혔습니다. 결정서는 ’청년들을 시대의 주인으로 키워 사회주의 강국의 문패를 달게 하려는 것’이 노동당의 의지이자 일관된 방침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청년동맹 10차 대회의 주요 결정을 세 가지로 설명했는데요. 먼저 명칭 변경입니다. 두 번째로 새로운 명칭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은 ‘사회주의 건설의 후비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충실성을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사회전반적 영역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이름이 잊혀지거나 빛이 바래도록 두거나, 그 이름을 실제로 지워나가는 방향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김일성-김정일의 업적을 지키기 위해서 소모적으로 낭비하는 노동력과 재원들이 적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국경지역에서 온 한 탈북민 청년은 제품을 생산해 내지도 못하는 공장기업소의 근로자였는데, 그 공장의 동료 근로자 50% 이상은 출근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공장은 문을 닫지 않았고, 대신 근로자들은 다른 곳에서 돈벌이를 해서 매달 400위안이나 되는 큰 돈을 돌아가지도 않는 공장에 냈다고 합니다. 불합리한 경제적 손실을 낳고 있는 현상인데요. 왜 문을 닫지 않냐는 제 질문에, 김일성이 과거 현지지도 한 공장이라서 그렇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제적 효율성 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공장은 폐쇄하고 다른 투자자를 찾아야 하겠지만 단지 김일성의 현지지도 명패 때문에 텅빈 공장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사례들은 전국에 넘쳐날 겁니다.
이번에 노동당의 핵심적 외곽조직인 청년동맹의 명칭에서 ‘김일성-김정일’을 삭제했다니, 상징적 의미에서도 그리고 실용적 면에서도 현실성을 추구하는 듯 보이기에 적극 환영합니다. 역사의 영웅을 청년들 삶에 교훈과 발전의 촉매제로 활용한다면 긍정성은 크겠지만, 지금 북한과 같이 역사적 인물을 신화나 미신으로 만들 경우는 불필요한 국가적 손실이 더 커집니다.
어느 나라나 청년들의 역량을 발전시키고 이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도록 정책을 세우는데 초점을 두기 마련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청년동맹의 명칭 변경을 계기로 북한당국이 청년들을 위한 역동적인 정책을 펼치는 동기가 되기를 바라는데요.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9일자로 청년동맹 10차대회에 보낸 서한 내용에는 실망스러운 면도 있었습니다. ‘문학 예술작품들을 통한 교양사업’과 ‘대중체육활동과 군중문화 예술활동을 통해 청년들의 약동하는 분위기가 차넘치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비사회주의 행위를 쓸어버리는 투쟁에 ‘조직의 힘을 최대로 발동’시키도록 독촉했는데요. ‘이색적인 생활풍조가 침습할 공간’들을 철저히 장악하라는 지시도 있었습니다. 이색적인 생활풍조라면 단연코 남조선 문화를 말하겠는데요. 전 세계의 청년들이 즐기고 배우고 공유하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와 예술을 북한청년들에게만 차단한다니 참 아쉽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 같은 남한의 문화적 영향을 차단하려는 당국의 사회적 검열과 규제가 북한 청년들에게는 정치적 경제적 피해이자 인권유린의 원인도 될 것이기에 걱정입니다.
한편, 이날 노동신문의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면서 우려스러운 점이 더 늘었습니다. 평양시 1만 세대 살림집 건설에 참가한 ‘속도전 청년돌격대’의 활동을 격려하는 기사였는데요. 돌격대원들이 ‘청춘의 기백을 남김없이 떨치며 맡은 대상공사’를 다그치고 있다지만, 오로지 청년들의 집약적인 노동력만 의지하는 돌격대는 극도의 노동강도를 요구하는 구조이기에 인권유린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형이 불리하여 기계수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기초굴착을 짧은 시간에 결속했다”는 기사는 '건강에 위해가 되는 노동을 금지'하라는 국제인권 규약을 북한당국이 위반했단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 외에도 ‘청년들의 영웅적 위훈’을 자랑하는 기사는 청년들이 역사적으로 국가 건설현장에서 자신을 희생한 사례들을 영웅시하는 내용들로 가득했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던 ‘청년영웅도로건설’을 언급하며 청년들의 희생을 강조했는데요. 건설현장의 안전교육을 위한 교훈으로 언급해야 할 비극적 사례들을 로동신문의 기사는 청년들의 희생을 무릅쓴 노력동원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했다니 좀 잔인해 보입니다.
한 인간의 생애주기를 보면, 청년시기야 말로 잠재력과 꿈이 가장 풍만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청년기의 잠재적 역량은 노동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기술, 기업활동, 지식 정보 및 학술분야, 체육, 문화 예술 분야에서 역량을 펄치는 탈북민 청년들의 사례들을 보면, 북한청년들도 전문 분야에서 충분히 꿈과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북한당국이 청년들을 대상건설 현장의 노력동원 대상으로만 인식해서는 청년들이 시대의 주인이 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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