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들어서면서 북한 당국은 대남 비방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당국의 담화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는지 모든 정치조직 단위별로 군중집회를 조직해, 경박해서 입에 담기에도 거북스런 표현으로 남한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을 대변하는 매체인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여다 보는 북한 대표 신문입니다. 신문의 1면부터 ‘능지처참’이니 ‘무쇠철마로 짓뭉개’겠다느니, ‘죽탕처버리자’는 등 20대 남한 청년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를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고문을 형상하는 표현들과 분노와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말들로 가득합니다. 당국은 연합기업소와 공장, 여맹, 직맹, 농근맹, 청년학생을 동원해서 항의 군중집회를 진행합니다. 엄청난 규모의 군중들을 군대식으로 줄 세우고 집단체조 하듯이 일제히 주먹을 치켜든 사진들을 자랑스럽게 내보냈습니다. 하루하루 장사나 농사에 매여 먹고살기에도 바쁜데 국가적 규모의 군중대회에 동원돼 더운 날씨에 주민 여러분도 고생이 많을 것 같습니다.
북한 당국은 각 단위의 직장인, 농민, 청년 등 인민대중의 이름을 내걸고 욕설을 사용한 공식 담화들을 내보내면서 남한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라고 독촉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정작 분노에 쩔쩔 매고 있는 주체는 행사에 동원된 주민들보다 북한 당국입니다.
무엇이 북한을 그렇게 분노하게 만들었는가.
논평 내용과 기사 제목들을 보면 답이 보입니다. ‘공화국의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모략소동’ 또는 ‘최고존엄을 건드린 죄’ 그리고 ‘최고존엄은 인민의 정신적 기둥이고 운명의 태양’인데 탈북민들이 이를 우롱하니 용서할 수 없다고 쓰고 있습니다. 거기다 남조선 당국자들은 남한의 탈북민들을 묵인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즉 탈북민들이 북으로 날려 보낸 전단의 내용이 ‘최고존엄’을 비방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북한 전 주민들이 분개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대북 전단지가 최고존엄을 우롱하고 최고존엄의 심기를 건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 건 맞습니다. 주로 북한 주민들이 모르는 백두혈통 가문의 감춰진 비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김정은 위원장 가족의 출신 배경, 어머니의 출신성분,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살해한 사건에 대한 설명 등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각계각층 주민들을 동원해서 지역 곳곳에서 군중대회를 진행할만큼 분노할 문제인지 의문이 듭니다. 북한 주민들 중 누가 직접 자신의 눈으로 이 전단 내용을 확인해 봤을까요? 아마도 대다수 주민들은 직접 본 적은 없을 겁니다. 순전히 선전선동부가 탈북자들이 전단을 뿌려서 최고존엄을 비방한다는 담화를 하고 강연내용을 내리니 그런 가보다 하겠지요. 물론 어떤 내용으로 비방하는지는 알려주지도 않고 살펴볼 수도 없는 게 현실일 겁니다.
그 나라 지도자를 비난했다고 정부가 전 국민을 동원해서 데모를 진행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없습니다. 일반적인 국가에서 일어나는 데모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 또는 사회적 정의를 위해서 조직하고 자발적으로 참석해서 진행됩니다. 물론 데모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지금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유색인종 차별을 근절하자는 목적의 시위도 그렇습니다. 2년 전 남한에서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위 사건이 알려지면서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전 국민적 목소리가 결집했고 수 십만이 모이는 시위가 진행됐습니다.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33년 전에는 군부독재에서 벗어나, 전 국민이 투표를 해서 대통령을 뽑는 민주주의 정치를 세우자고 남한 시민들, 청년, 학생들이 데모를 시작했습니다. 1987년 6월 10일을 기점으로 그 데모는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전투경찰이 휘두르는 곤봉과 최루탄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국민들이 길거리로 뛰어나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 투쟁 사례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데모를 조직하고 동원하지는 않지요. 물론 시민들의 데모 때문에 국가가 무너지는 일도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도자 한 개인이 국가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주권, 땅, 국민과 정치기구, 다양한 사상과 이념, 경제력, 문화와 문명 등 그 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요소들이 공존하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또 국가 지도자를 비웃거나 비판했다고 정부가 전 국민을 분노하도록 동원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북한 당국이 대남비방 수준을 계속 올리고 있는 것이 단지 탈북민을 구실로 남한을 적대시하기 위한 의도만은 아니란 걸, 남한 시민사회나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국제적인 북한 전문가들은 알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 입장에서 남북관계가 더 이상 북한의 경제적, 정치적 또는 외교적 실익에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남한과 거리를 두면서 남한과 미국을 압박해 보자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북한 당국의 ‘최고존엄의 신성모독’ 주장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악영향을 줄 뿐만아니라 주민들의 건강한 정신 세계를 해치게 되니 우려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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