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유엔 가입 30주년을 맞이해 한국 외교부 주최의 국제 행사가 열렸습니다. 지난 30년간 한국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홍보하고 국제적 협력을 강조하는 행사였습니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도 인터넷으로 연결해 축사를 전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역할을 했던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국제적 기여를 언급하며 한국이 다자외교 정책에 협조적인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준다고 평가 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병 시기에 국제 연대가 더 필수적인데 한국이 협력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유엔 가입은 북한과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따라서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도 남북 공동 유엔가입 30주년을 축하한다며 “본 기념일이 남북한 사이의 다리를 잇고 평화와 화해의 가치를 재확인하며 지속적인 협력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1991년 9월 17일 제 46차 유엔 총회에서 승인되었습니다. 남북한은 해방 이후 각자 정부 하에 독자적인 국가로 운영되었지만 냉전 시기 이념 갈등으로 양국 모두 유엔 회원국으로 승인되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동유럽의 붕괴로 사실상 동서 이념 갈등의 시기가 끝나며 남한은 소련을 포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찬성표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미국 등 상임이사국의 찬성으로 유엔 가입이 가능했습니다.
유엔 회원국으로 공식 인정을 받은 이후 한국은 유엔 당사국으로서 임무와 역할, 책임을 다하고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당시 한국의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이념을 초월한 외교 관계를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북한도 미국 영향권 하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기 시작한 게 2000년대 초반이므로 남북한이 비슷한 시기에 국제무대로 나왔다고 말해도 무방하겠습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은 남북이 판이합니다.
한국 정부는 1990년 6월 소련과 정상회담을 갖고 같은 해 9월 30일 한-소 수교를 맺었습니다. 그후 2년이 지난 1992년 8월에는 중국과 수교를 맺고 12월에는 베트남과 외교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렇게 유엔 가입 이후 구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음으로써 한국은 냉전에서 탈피해 새로운 국제질서의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소 수교가 이뤄지자 현대 정주영 회장은 모스크바로 달려가 소련의 시베리아 개발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고요. 중국과 외교관계가 형성되자 한국의 현대자동차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를 제치고 독일의 폴크스바겐 다음으로 많은 자동차를 중국에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삼성, 엘지 등 한국의 여러 전자제품 기업들은 동유럽 구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1991년 한국의 중국 대상 수출액이 10억 달러였고 수입액은 34억 달러가 조금 넘었는데요. 2020년 수출액은 이보다 136배 이상, 수입액은 약 32배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대비 대미 수출액은 약 4배, 수입액은 3배 증가해 결과적으로 대중 수출입 규모가 미국 대상 수출입 규모보다 거의 2배 더 큽니다.
한국이 중국이나 베트남과 서로 총을 겨누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30대 이하의 한국 청년들의 눈으로 본다면 참으로 비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국도 베트남도 한국에게는 친숙한 국가가 돼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세계를 지배하던 사상과 이념의 시대는 30년 전에 끝났다는 사실을 북한 당국도 인식해야합니다.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을 향해 시장의 문을 활짝 열었지만 현재 미국과 중국의 정치이념에 한국이 점령당한 상태가 아니란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오히려 중국과 미국 청년들이 한국의 문화를 즐기고 있지요.
국제사회는 이제 사상과 이념의 가치로 어느 특정 국가를 점령해 강대국이 추구하는 이념을 주입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유엔 회원국으로서 당사국이 지켜야하는 임무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지요. 당사국 정부의 임무란 자국민의 인간존엄성과 가장 보편적 인권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원칙으로 유엔의 여러 기구들은 북한주민들의 생활에 도움을 줄 방안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북한당국이 주눅들어 문을 닫고 있는 상태입니다.
로동신문은 ‘낡은 형식과 도식적인 틀을 배격하고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혁신해야 한다’는 김정은 동지의 말을 강조했지만, 정작 혁신의 방법으로 ’1970년대 시기처럼 지칠 줄 모르는 불타는 열정으로 열백 밤을 세워서라도 당의 노선과 정책을 결사관철하려는 기풍'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한계입니다. 주민들의 노동력만 의지할 게 아니라 국제사회에 정상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문만 열면 되는 겁니다. 유엔 가입 30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국제사회와 협력하는데 겁을 내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