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1일 국제형사재판소가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약자로 ICC라고 부르는 국제형사재판소는 관련 법령, 기소 방법과 절차 및 재판소 구조 등을 총체적으로 정한 ‘로마규정’이 1998년에 만들어지면서 전 세계의 형법적 관할권을 가진 국제 상설 사법체계로 설립됐고요. 2002년 이 날 최소 필요 회원국 60개 국의 로마규정 비준으로 재판소가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서유럽의 북해에 인접한 나라인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범죄는 네 가지로 국한됩니다. 민족이나 인종, 종교 등으로 구별되는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없애기 위해 대량의 사람들을 살해하는 ‘학살’과 전쟁 중에 민간인을 고의적으로 살해하거나 고문하는 ‘전쟁범죄,’ 한 국가가 주권을 가진 다른 국가를 침해하고 공격하는 ‘침략범죄’ 그리고 ‘반인도 범죄’입니다.
반인도범죄는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일반주민들을 지목해서 자행하는 폭력을 말하는데요. 살해나 노예제도, 강제 이주, 국제법의 기본 법률을 어기며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는 감금, 고문, 성폭력, 납치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상해를 입혀서 의도적으로 고통을 유발하는 식의 비인도적 행위들을 광범위하게 대량으로 일반인들에게 자행할 때 ‘반인도범죄’라고 부릅니다. 이 범죄행위와 공격이 국가나 조직적 정책의 일환으로 자행될 때 범죄의 요건이 형성됩니다.
2013년 초 유엔의 권위있는 인권과 법률 전문가들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조사한 적이 있었지요. 조사위원회가 그 다음 해에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행했는데요. 이 보고서는 북한당국이 우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저지르고 있는 ‘반인도범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특히 정치범관리소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반인도범죄가 벌어지고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를 발견했는데요. 관리소 수감자들을 노예와 같은 상태에서 강제노동을 시키는 관행, 비인간적인 상태에서 감금해두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뿐만아니라 남한사람을 포함해 외국인까지 납치해갔던 과거의 범죄사실도 밝혀냈고요. 중국으로 탈북해 나간 사람들이 북송됐을 때 보위부 구류장에서 겪었던 비인간적인 처우과 고문, 극도로 열악한 환경의 구금시설 운영 등이 이 범죄에 해당됩니다. 임신한 여성들을 구금시설에서 강제로 낙태시킨 관행도 반인도적 범죄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견해나 인종, 성별, 출신성분에 따라서 특정 무리의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되므로, 북한의 정치체제와 지도력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해서 일반주민들을 정치범관리소나 교화소에 수감한 것도 반인도범죄로 보인다고 합니다. 따라서 반인도범죄를 저지른 주요 가해자들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상황을 ICC에 회부할 방안이나 유엔이 특별재판소를 설립하는 방안들을 내와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2002년부터 국제적 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법적 책임을 파악하는 역할을 시작한 ICC는 북한의 반인도범죄 책임자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가 향후 숙제일텐데요. 이 법정에서 다루는 범죄는 재판관할권이 행사되는 한에서 공소시효가 없는 범죄입니다. 즉 현재까지 밝혀진 북한의 반인도범죄 또한 공소시효가 없어서 언젠가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책임자를 판가름해야 할텐데요. 국제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북한당국이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받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반인도범죄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들을 취하는게 도움 될텐데요. 유엔과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반인도범죄 문제를 ‘반공화국 모략'이라고만 치부하지 말고, 현재 자행되는 문제부터 조금씩 수정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어떨까요? 반인도범죄의 해결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최근 북한을 떠나온 탈북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2010년대의 북한상황과 김정은 정권 이후의 북한상황이 꽤 달라졌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위원과 보안원으로 일했던 탈북민들은 2014년 경부터 ‘수감자들을 다치게 하지 말라’ 또는 ‘인권 때문에 시끄럽게 만들지 말라’고 중앙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 ‘인권’으로 문제가 생길 때는 담당자가 처벌 받거나 정복을 벗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최근에 북한을 나온 탈북민들은 ‘성분’ 때문에 피해를 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부모나 조부모의 성분이 나빴지만 본인이 재간이 있어서 사업을 벌이고 돈을 벌 경우 담당보안원에게 뇌물을 주면서 집도 크게 지어서 잘 살았다는 증언들이 많습니다. 범죄에 연루돼 교화형을 받아도 성분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돈만 있으면 뇌물을 고이고 죄형을 가볍게 만들고, 수감됐더라도 편하게 교화형을 마칠 수 있었다는 증언들이 대다수입니다. 강력한 감시통제와 공포정치가 뇌물을 확산시킨 부작용이 있습니다만, 이제는 성분보다 경제력이 앞선다는 걸 보여준 증언입니다. 개인이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출신성분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입니다.
국제적인 인권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아주 소극적이고 미미한 변화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현실을 놓고보면 의미있는 변화로 보입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성분에 따른 차별을 극복할 방안이 생겼다고도 할 수 있으며, 또 구류장에서 폭행이나 고문으로 인권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공식적으로 제기해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북한당국이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인권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주민들도 그리고 국제사회도 인정하는 수준까지 개선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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