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성인들은 대부분 '전국이 1일 생활권’에 들어 갔다는 선전구호를 기억할 겁니다. 부산과 서울을 잇는 경부고속도로 덕분에 전 국민이 하루만에 다른 도시에서 일처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자랑입니다. 지금이야 140km 거리의 대전과 서울 사이를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정도지만 1970년 이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습니다. 1970년 7월 7일 2년 5개월의 공사를 마감하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까지는 대도시를 잇는 일반 도로에도 하루에 차량이 한 두대 겨우 오가는 상황이었는데 공사비가 400억 원 이상 드는 고속도로를 놓겠다는 계획이 터무니 없어 보였습니다. 1967년 1년 국가의 총 예산액이 1,640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국가 예산의 4분의 1에 달하는 돈을 투입해서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자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박 대통령이 공상과학 같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1964년 도이췰란드 즉 당시 서독을 방문해 고속도로의 경제력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아우토반’이라고 불리는 독일 고속도로는 일부 구간은 속도제한이 없고 보통은 시속 180킬로미터로 질주할 수 있는 거대한 국가 기반시설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80-90년대 남한의 초고속 경제성장의 척추역할을 제대로 했습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으로 첫째는, 발전과 성장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목적 달성에 필수적인 여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점입니다. 1960년대 중후반 남한 사람들의 인식에는 고속도로에 대한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속도로 주변 거주자들에게 차가 다니는데 방해가 되는 가축이나 물건, 사람들이 도로 위에 있으면 안 된다는 홍보까지 해야 할 수준이었답니다. 그만큼 현대문명에 무지했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부산의 국제적 항구와 울산의 정유공장, 포항의 제철공장을 서울과 연결시키는 동맥을 깔았습니다. 두 번째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국제사회의 발전을 우리의 것으로 도입하는 혁명적 전환을 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1960년대 말 서독은 1인당 국민소득이 3,500달러 수준의 나라였고 남한은 160달러가 겨우 넘어가는 수준이었습니다. 거대한 경제력의 차이가 있던 상황이었지만, ‘라인강의 기적’ 즉 독일의 경제 발전을 추동했던 아우토반을 남한에 도입하자는 용기있는 발상이 바로 혁명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해 6월 초 평양의 간부들에게 주던 식량배급이 3월부터 끊겼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7월 초 김일성 사망 26주기를 앞 두고 평양시민들에게 특별 배급을 했다는데요. 긴급히 배급을 실시한 건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지시로 중국에서 상당량의 곡식을 들여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북한당국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국가가 주는 배급은 이제 주민들 생활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평양시민들에게라도 당국의 배려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인데요. 단말마적 임기응변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는 없습니다. 북한주민들 생활에 다양한 어려움을 발생시키는 원인은 배급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없는 직장’에 있습니다. 인건비가 없는 국가 공무원들이 ‘단속'이나 ‘규정'을 들먹이거나, ‘숙제'를 요구하며 일반 주민들에게 돈을 갈취해서 기관도 운영하고 개인 살림살이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피해를 보는 측은 시장에서 돈벌이를 하는 보통 주민들입니다. 당국은 일회성 배급을 주기 위해 돈과 열정을 쏟을 게 아니라, 그걸 공무원들과 국영기업 노동자들의 공식 노임을 올릴 장기적 전략을 모색해야 합니다. 중국은 1980년대 초반에 도시 노동자들의 노임에 ‘가격상승 보조금’을 국가가 지불해서 시장가격 인상에 대처했습니다. 당시 국가 재정지출 70%의 비중을 국가보조비로 지출했고 이후에는 국가 보조금 부분을 정식 임금으로 포함시켜서 임금체제 개혁을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로동신문은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투쟁은 …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성스러운 애국투쟁”이라면서 “사회주의강국으로 강화발전시키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필생의 념원이었다”고 선전합니다. 하지만 부강번영을 하려면 먼 미래를 보면서 개혁적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지금 세대가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의 손녀 세대도 똑같이 '장군님 유훈' 타령을 하며 인민들 배급걱정만 하게 될 것입니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고속의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세기를 앞서서 내다 볼 수 있었던 남한 지도자들의 국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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