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에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대대적으로 자랑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백 명의 중등학원과 고급중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졸업식도 하기 전에 북한 주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직업을 스스로 지원했다는 보도였습니다. 하지만 국제 인권규정을 놓고 봤을 때 이 관행은 엄연한 인권유린입니다. 따라서 유엔 인권전문가들이 북한당국에게 편지를 보내 아동들 대상 인권유린을 중단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동해학원과 서해학원의 졸업반 150명의 원아들이 당 제 8차 대회와 청년동맹 제 10차 대회의 정신으로 조국을 위한 보답을 하겠다며 사회주의 주요 전구들로 용약 탄원한 것을 북한 당국이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 총비서의 말을 인용해서 단 몇 개월 사이에 수천 명의 청년들이 어렵고 힘든 부문들에 탄원해서 진출했으며 이는 “우리 청년들만이 지니고 있는 숭고한 정신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노동신문은 이어서 석탄생산이 기본’이라고 한 김정일의 유훈과 당 정책을 받들어 부강 조국건설에 이바지 하기 위할 마음으로 청년들이 탄광으로 협동농장으로 투쟁행로에 삶의 좌표를 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5월 27일에는 150명의 고아들이 탄원했고, 이틀 뒤 29일은 황해북도의 중등학원과 고급중학교 700여 명의 졸업반 학생들도 탄원했다며, 제철소, 탄광, 협동농장, 임업 부문, 청년돌격대 등 가장 힘든 산업부문으로 탄원해서 갔다고 자랑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17년 유엔의 아동권리위원회가 북한의 아동권리 실태를 검토하는 회의에서 유엔 위원들이 지적했던 북한의 아동권리 침해 사례들이 앞서 설명한 노동신문의 기사와 일치한 겁니다. 이 노동신문 기사 내용에 기초해 유엔의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교육권 특별보고관, 현대식 노예제도 특별보고관이 북한당국에게 편지를 보내 아동들 대상 인권유린을 멈출 것을 요구했는데요.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은 국제법에 의거해 보호받게 돼 있는데 북한의 중등학원과 고급중학교 졸업반 학생들은 엄연히 17세이므로, 이들의 탄광과 협동농장 배치는 아동 노동권과 교육권을 위반한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거기다 현대식 노예제도에 해당하는 돌격대에 17세 졸업반 아동들을 무리 배치하는 것은 반인륜 범죄를 자행하는 것이라 걱정했습니다. 내년 초에 졸업할 예정인 학생들 중 돌봐 줄 가족과 친척이 없는 고아들과 권력도 경제력도 없는 부모를 둔 가장 열악한 환경의 아동들을 모든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직업에 강제로 배치한 꼴인데요. 이건 아동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은 것이고 차별이자 직업선택의 자유와 적절한 경제활동으로 생활을 영위할 경제권과 사회권을 박탈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강제노동이자 현대식 노예제도에도 해당됩니다.
유엔의 관련 특별보고관들은 북한당국에게 보낸 서한에서 현재 탄광이나 건설현장과 협동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고아와 아동들의 수, 나이, 성별을 유엔에 제출하라고 요구했고요. 이 아동들이 일하고 생활하는 환경은 어떤지, 고아들의 교육권은 어떻게 보장하는지도 상세히 설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또 아동들에게 경제적 과제를 거둬들이는 관행을 중단하라는 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를 실행했는지도 질의했습니다. 현대식 노예제도에 해당하는 강제노동을 중단하도록 법을 제정하라고 권고도 했습니다. 덧붙여 북한이 ILO(국제노동기구)에 가입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북한당국은 8월 29일에는 험지로 배치돼 새 인생을 시작한 아동들에게 애국청년이라고 칭찬하는 김정은 총비서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고요. 31일에는 청년들을 직접 만나서 앞날을 축복해 줬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물론 북한 사회에서 김정은 총비서의 축복과 서한이 청년들의 미래에 닥칠 수도 있을 위기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10대 중후반의 아동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총비서의 축복이나 편지가 아니라, 원하는 곳에서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유용한 지식을 배우고 능력껏 일하고 일한 만큼 경제적 이득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는 최근에 북한을 떠나 한국에 사는 탈북민들 중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도 많이 만나봤는데요. 남한이나 북한이나 자식의 장래를 위해 엄청난 열정을 쏟는다는 건 모든 부모들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았던 어머니도 자식을 좋은 직장에 배치시키기 위해 돈을 모아 뇌물로 고였고, 생계비 벌이도 안 되는 직장에서 수입금을 내고 벗어나서 위험을 무릅쓰고 당국이 허락하지 않는 돈벌이를 하던 아버지도 자식들을 공부시킬 목적이었고, 자식세대의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자식을 더 큰 도시에서 살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 부모도 만나봤습니다.
이렇게 더 나은 미래를 열망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특히 북한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개인적 돈벌이에 더 큰 관심을 가진다는 연구도 있는데요. 북한당국이 청년들의 열정과 개인적 취향에 맞게 다양한 영역에서 수익도 창출할 수 있게 허락한다면, 고아들의 탄원이라는 핑계 없이도 국가적 개인적 발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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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