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가 공동으로 ‘업무 관련 질병 및 부상에 관한 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 국가들의 노동환경에 따른 질병과 부상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연구한 보고서인데요. 세계보건기구는 정부와 기업이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보장을 위한 책임 의식을 높이는 것이 이 보고서의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에서 노동과 연관된 이유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2000년에 인구 10만 명 당 41.6명이었고 이 숫자가 2010년에는 60.4명, 2016년에는 63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사 대상 국가 183개국 중 북한의 사망자 숫자는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또 과로로 인한 뇌졸중으로 사망한 사람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2000년에는 인구 10만 명 당 12.9명, 2010년은 21.2명, 2016년은 22.3명이 사망했습니다. 북한보다 한 단계 나은 국가는 인도네시아였는데요. 이 나라는 2016년 뇌졸중 사망자가 14.5명이었으니 북한과 차이가 꽤 큽니다. 반면 한국은 3.4명이었습니다.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게 된 노동자의 수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독 북한에 많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노동신문 기사를 조금만 들춰보면 답이 보입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 총비서의 말을 인용해서 기사 내용을 전개하는데요. 그 인용구들만 봐도 노동환경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청년들은 … 인민경제계획을 조국이 주는 전투임무로 여기고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수행하며 증산경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려 ...... 》라는 총비서의 말을 인용한 기사가 있는데요. 노동환경과 조건은 무시한 채 어떻게든 임무를 수행하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말씀’에 따라 “올해 전투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기 위한 투쟁에로 대오를 이끌어나가자”고 노동자와 일군들을 독려합니다. 산업현장이 기계화되지 않은 조건에서 ‘강령적 과업의 무조건 관철’은 집약적인 노동과 노동시간의 연장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과로의 원인이지요.
총비서의 말이나 당국의 방침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태도나 사상과 연관된 것으로 여기는 관행 또한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됩니다. 여명거리 건설에 대한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는데요. “70층 초고층 살림집의 골조는 70여일 만에, 축구경기장 몇 개를 합친 것보다 면적이 더 큰 이 건물의 외벽타일 붙이기는 불과 10여일 만에 끝났다 … 건설이 선포된 때로부터 불과 넉 달 남짓한 사이에 치솟은 수십 동의 아빠트 골조… 최악의 도전을 최고의 속도로 맞받아 나가는 그 기상은 자기의 사상과 신념을 수호하는 조선의 강용한 기상이였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에 건축물 붕괴 위험이나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우려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김정은의 말을 실천하지 못할 경우 자칫 정치범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로,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건설현장의 안전을 고려할 수 없는 현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산업재해나 안전 문제를 무시하고 ‘말씀의 무조건 관철’을 위해 뛰어든 사람을 적극 칭찬하는 기사들도 많습니다. “생산실적을 떠나서 우리 탄부들의 충정심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석탄산의 높이가 충정심의 높이입니다”라는 김정은의 말에 따라 막장이 붕괴했는데도 석탄을 더 캐기 위해 막장으로 뛰어들어 일주일간 더 석탄을 캤다고 자랑하는 기사도 있습니다. 순천지구 청년탄광련합기업소의 수 천 척 지하 막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불의에 터진 석수를 몸으로 막아내고 위험한 붕락구간을 향해 육탄으로 돌진하던 복구전투의 선봉’에 섰다고 칭찬하는 보도도 보입니다.
이처럼 노동신문 기사는 북한 노동자들의 질병이나 상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은 이유를 잘 보여주는데요. 다시 정리해 보자면 첫째는 김정은 총비서의 말씀이나 당국의 방침은 무조건 관철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관행이 문제이고요. 둘째, ‘말씀’이 최우선 가치이므로 ‘무조건적 수행과 관철’을 위해서라면 상해나 인명 살상은 대수롭잖게 여기는 분위기도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경제력이 낙후해서 기계화가 이뤄지지 못했기에 모든 것을 노동자들의 손에만 의존해야 하는 환경에 있습니다.
이 같은 북한 노동환경의 본질을 잘 파악한다면 산업재해와 노동자 건강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방도도 바로 보입니다.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은 총비서가 “계획 수행에 앞서 우리 노동자들의 건강을 제일 앞자리에 두어야 합니다”라는 말씀을 전달하는 겁니다. 이렇게 한다면 ‘말씀의 무조건적 관철' 정신에 따라 국제노동기구가 우려하는 노동자를 위한 산업안전과 질병 문제는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될 겁니다. 이것이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실천하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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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