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베트남의 활력에서 얻는 교훈

0:00 / 0:00

북한의 동맹국이라도 로동신문에는 다른 나라의 사회모습이나 인민들의 생활, 정치나 경제 상황을 설명하는 보도들은 거의 없습니다. 노동신문에 윁남을 언급한 기사들은 있긴 하지만 그 나라 정보를 찾아 볼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지난 한 주 윁남 즉 베트남을 다녀왔는데요. 제가 본 베트남의 모습을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베트남의 경제 수도라고 불리는 남쪽에 위치한 호치민시에서 베트남 경제학자와 사업가, 외국인 투자자, 베트남을 연구하는 교수님, 대학생들을 만나서 베트남이 어떻게 지금 같은 경제적 발전과 안정을 이루게 됐는지 토론해 봤습니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대수롭잖게 취급하고 있는 베트남은 사실상 세계 사람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관광지이며 세계의 사업가들에게는 성장하고 있는 투자대상 국가이고 중국과 함께 세계의 제조업에서 공장 역할을 하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제가 본 호치민시는 에네르기가 넘쳐 흐르는 시끌벅적한 대도시였습니다.

베트남은 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탓에 주요 건물들은 서유럽식으로 지어져 고풍스런 운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과 공산당 집권시기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럽풍 건물들은 빛도 바래고 외관도 허름해져 낡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건물을 호텔로 개조하거나 식당이나 다양한 상업 목적으로 활용해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세계인들의 대오와 함께 발맞추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이 이렇게 국제사회로 나오게 된 건 1986년에 시행한 개혁 정책인 ‘도이모이 정책’ 덕뿐입니다.

도이모이는 베트남 말로 ‘새롭게 변경한다’는 의미로 경제적 쇄신을 뜻합니다. 1986년 제 6차 공산당대회에서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당시 내전, 캄보디아와 중국과의 전쟁 등으로 국가 전체는 피폐했고 농업 또한 형편 없었습니다. 당시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경계했지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로 목표를 정하고 세계를 향해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당국의 완전한 통제와 지도 하에 있던 산업시설과 집단농장의 당적 지도를 완화해 나갔습니다. 계획경제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농업을 개혁하고, 가격자유화, 국영기업의 민영화, 금융개혁, 시장개방을 통해 외국자본을 유치했습니다. 그 결과 도이모이 정책 도입 초기였던 1991년과 비교했을 때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이 103달러에서 2019년엔 2,700달러가 넘었습니다. 실질경제성장률도 1991년에 3.0%였던 것이 2018년은 6.5%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영국의 한 부동산 관련 기업이 도시역동성지수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2017년 지수에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순위 2위에 호치민이 올랐고 정치 수도인 하노이가 8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만큼 국제적 상위 수준으로 활발한 경제활동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만난 체코인 투자자는 베트남 사람들은 빨리 배우고 열심히 일하고 사고도 개방적이어서 사업하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칭찬했습니다. 1986년도 개혁정책을 추진하던 베트남 경제관료도 만났습니다. 이 분은 과거 85년까지는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단호히 주장했습니다. 지도부가 과감하게 생각을 바꾸고 정부의 지원을 자유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여러 나라에서 자본을 유치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민간경제 분야가 국가경제 발전의 핵심이므로 민영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베트남 경제 전문가는 과거 베트남은 수백만이 굶어 죽은 기아를 경험한 국가였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좋은 타치폰 손전화인 삼성핸드폰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로 전환됐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제가 만난 베트남의 경제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국가계획경제보다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경제가 그리고 자력갱생보다는 외국의 투자와 협력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가를 안정적으로 만든다는 사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도이모이 경제개혁을 진행한지 33년이 되는 올해 호치민시에는 각종 외국 기업 상품들의 광고판과 상점들로 번쩍였고 호치민 시민들은 일본 한국 미국에서 만든 고급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또 막스레닌주의자인 호치민이 사망한지 50주년을 기념하는 정치 간판들이 거리에 무수히 서 있었습니다.

베트남의 경제수도 호치민의 활기와 동력과 국가적 안정을 목격하면서 이 모습이 북한의 미래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봤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