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노벨 평화상을 받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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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면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는 연례행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노벨상 수상식입니다. 노벨상은 물리학이나 화학, 의학, 문학 등 여러 부문에서 그해 가장 눈에 띄는 업적을 이룬 사람을 뽑아서 상금과 상을 주는데요. 올해 유독 눈에 띈 부문은 노벨 평화상입니다. 지난 8일에 202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발표가 있었는데, 기자 두 명이 공동으로 호명됐습니다.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성명을 발표해 언론인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축하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취재 활동을 하는 많은 언론인들이 저격 당하고 고소도 당하며 때로는 잔인하게 짓밟히기도 하는데 용감한 언론인 두 명의 노벨상 수상이 모든 언론인들을 위한 활력소가 되었다” 고 했습니다.

필리핀 여성인 레사 씨는 다국적 언론 매체인 CNN의 탐사 기자로 일하다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2012년 ‘래플러’라는 인터넷 신문사를 창립한 인물입니다. 레사와 래플러의 기자들은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의 폭력적인 권위주의 통치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들을 주로 다뤘는데요. 특히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퇴치를 위한 전쟁’ 그리고 정부 기관의 부정부패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법적 절차 없이 엄청난 규모의 살상이 있었던 사실을 폭로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은 레사와 언론사 래플러를 협박하기 위해 탈세 혐의로 수사하고 명예훼손으로 고발도 했습니다. 아직도 필리핀 법정에서는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데요. 유죄로 결정 나면 최대 6년 형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남성 무라토프 씨 또한 권위주의 러시아 정부의 반인권적, 불법적 행위들을 고발해 온 언론인입니다. 무라토프 씨는 ‘노바야 가제타’ 신문의 공동 설립자입니다. 무라토프는 이 신문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푸틴 정부의 불법 행위를 폭로해서 이름이 알렸습니다. 러시아 경찰의 야권 인사의 불법체포나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정부의 인터넷상 여론 조작 행위 등 러시아의 푸틴 정부가 싫어하는 내용을 폭로했습니다. 특히 노바야 가제타 신문사의 기자, 안나 폴리코프스카야는 2000년대 초반, 체첸 전쟁 도중에 자행됐던 고문과 살상에 대해 기록영화를 찍던 중 2006년 저격 당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녀의 동료 기자 6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바야 가제타 신문은 정의와 진실의 가치를 위해 러시아 정부의 불법행위를 고발하는 취재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라토프 씨는 노벨 평화상 수상소감을 밝혔는데요. “이 상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노바야 가제타의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다 죽어간 동료들을 위한 것”이라며 “언론에 대한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도 언론인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기자들을 대표해서 상을 받는다”고 밝혔습니다.

이 두 명의 기자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주기로 결정한 노벨위원회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속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며 독립적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권위주의와 독재체제의 근본적인 속성 중 하나는 바로 국민들의 눈과 귀, 입을 막고 정보를 통제 조절하는 것인데요. 필리핀과 러시아에는 레사와 무라토프와 같은 용기 있는 언론인들이 있어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원칙에 따라 정의의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북한에도 노동신문이 있는데요. 국제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노동신문의 집필 방식은 정상적인 언론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노동신문의 거의 모든 기사는 김정은 총비서의 ‘말씀'을 먼저 서두에 제시하고 그에 따라 각급 기관, 기업소나 부문별 단위에서 어떻게 말씀을 실행했는지를 서술합니다. 이건 노동당 중앙의 지침을 선전선동부가 하달하는 당 기관지가 하는 일이지 북한 주민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하는 언론의 활동이 아닙니다.

물론 당의 지침과 정책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설명하는 기관지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미화만 하고 진실을 전하지 않는 노동신문은 기관지의 역할은 하고 있는 것일까요? 노동신문의 이 같은 성향 때문에 주민들은 노동신문에 나오는 기사를 신뢰하지 않게 됐습니다. 북한에서도 장마당 가격 동향을 보도하는 마을 신문도 나오고 대형 연합기업소의 근로자들의 일상적 어려움도 솔직하게 담는 기업소 신문이나 또 인민반 신문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주민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필리핀이나 러시아의 언론이 한 것처럼 정부와 투쟁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대로 기사로 보도하는 것도 바로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는 방법이자 언론의 역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