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태국의 군주제 개혁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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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올해 초부터 민주화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태국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는 지난 달 중순에 최고조로 격화돼 태국정부가 집회금지 긴급조치를 발표해서 5명 이상이 모이는 집회를 금지 했습니다. 하지만 수만 명의 태국 청년들이 거리로 나와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태국의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은 2014년 군부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과 군부정권이 제정한 헌법의 민주적 개정 그리고 왕실의 권한을 제한하는 등의 입헌군주제 개혁입니다. 시위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난 5일 태국 총리가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안에 서명했습니다만 국민들이 요구하는 개혁방안의 실현은 멀어 보입니다.

태국 민주화 시위의 계기는 올해 2월 중순에 있었던 태국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결정 때문인데요. 태국의 신생 정당인 퓨처포워드당(Future Forward Party)의 해산 명령입니다. 우리 말로는 미래전진당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퓨처포워드당(Future Forward Party)은 2019년 3월 총선에서 하원 의석 5백 석 중 81석을 차지해 세 번째로 큰 당이 되었습니다. 개혁적이고 투명한 민주정부를 지향하며 서민을 위해 싸우는 젊은 세력의 등장이 집권당에게는 큰 위협으로 보였습니다. 따라서 퓨처포워드 당의 정치 후원금을 문제 삼아 선거법 위반으로 걸어서 해산했습니다. 동시에 당 대표와 정당 지도부 17명은 앞으로 10년간 정치활동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지식인들, 대도시의 중산층부터 빈민층 시민들까지, 특히 민주적 개혁을 희망하던 젊은 세대들이 현 정부의 독재와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정치적 탄압에 반발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총리의 사임과 태국의 민주적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여기에 더해 사실상 총리의 군부독재를 지원하는 태국 왕실을 개혁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태국 정치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는 왕실이 한 몫 거들고 있습니다. 입헌군주제를 90여 년 지속하고 있는 태국은 군주에 대해서는 과거 봉건 왕조 시대의 관행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왕과 왕실에 대해 비판할 경우 최대 15년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는 법체계를 유지하며 주민들이 군주를 경외하도록 강요합니다. 극장에서 영화나 예술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왕실에 대한 찬양가를 먼저 틀어주는데 모든 사람들은 일어서서 왕에 대한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현대 문명화된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관행이지요.

과거 대다수 국민들이 존경하던 푸미폰 전 국왕이 2016년 사망한 후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고 현 국왕은 국민들이 존경할 수 없는 행동들로 문제가 됐습니다. 복잡하고 호화방탕한 개인 사생활은 물론이고,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왕실 재정도 법을 바꿔서 사유화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태국에서 코로나대유행병이 심각해지자 독일로 피신하기까지 해서 국민들의 신임을 잃었습니다. 따라서 태국 청년들은 국왕도 국민들이 선출한 국가기관의 견제를 받도록 개혁할 것, 왕실 예산을 감축할 것, 국왕의 정치적 개입과 간섭을 금지할 것 등 군주제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6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아직도 왕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심으로 청년들의 개혁요구를 불경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서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족의 출신배경만을 이유로 한 개인을 신성화하고 우상화하는 전근대적인 관행을 청년세대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거기다 군주제로 인해 국가 여러 부문에서 부정과 불화가 발생하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상황을 더 이상 보고 넘길 수가 없었던 겁니다.

어떤 정치체제로 국가가 운영되는가도 중요하지만, 국가정치에 책임있는 자들이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하며 건설적인 정치를 하는지 그리고 정치가 주민생활의 안정과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가 더 관건입니다. 태국 젊은 세대들은 현재 국왕을 신성시하는 오랜 관행과 체제 그리고 국왕의 비호를 받는 현 정권을 통해서는 공정하고 진보적인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거리로 나와 개혁과 민주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거의 90년 동안 절대적으로 보였던 국왕에 대한 경외심에 대해 비판과 의문을 품은 것만으로도 태국 청년들은 진보를 향한 큰 걸음을 뗐다고 보입니다.

태국의 현 사태를 보며 북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북한도 태국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진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라 이름이야 ‘민주주의’와 ‘공화국'이라는 정치체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자인 김정은 위원장까지 3대에 걸친 군주 통치를 하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인데요. 북한의 군주통치 하에서 북한 청년들은 더 진보적이고 더 발전된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어떠한 절대적 존경과 우상도 국민의 안정된 삶, 진보하는 미래의 가치 그리고 정의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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