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서울시 시청에서 서쪽으로 3킬로미터 정도를 가면 평화시장이 나오는데요. 평화시장은 첨단 의류산업에 종사하는 젊은 사업가들과 세계의 관광객들로 밤새 성황을 이루는 거대한 의류도매시장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남한의 의류산업을 선도하는 중요한 지점이자 매력적인 서울 관광의 요충지 역할을 하는 평화시장이 지금부터 50년 전에는 노동자의 기본적 근로권을 심각하게 유린하던 곳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라는 22세의 청년이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태일은 온 몸에 불길을 휘두르고 평화시장 앞 길로 뛰쳐나가며 외쳤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전태일은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같은 날 밤 10시 경에 명을 달리했습니다. 올해로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 태운지 딱 50년이 됩니다.
1970년은 남한의 일인당 국민총소득이 256만 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9년 북한의 일인당 국민총소득이 140만 원 정도라고 하니, 시대적 낙후성을 감안하면 소득 면에서는 현재 북한과 비슷한 사회상으로 상상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이야 그때보다 13-14배로 잘 살게 됐지만 1960-70년대 남한의 상황은 인권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면에서 열악했는데요. 특히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은 꽤 비참했습니다. 전태일은 1968년 말부터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했답니다. 법에서야 하루 8시간만 작업하도록 되어 있지만 평화시장에서는 하루에 16시간까지도 수당 없이 일을 강요받았고, 또 법에는 일요일마다 쉬게 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못했답니다. 거기다 10대 아동 노동자들마저 착취하던 상황도 있었고, 철야작업과 먼지구덩이 다락방의 좁고 불결한 작업실, 극도로 낮은 로임으로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전태일은 10여 명의 재단사들과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 모임의 이름은 ‘바보회’로 지었는데, 전태일은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기계 취급을 받아 왔기 때문에 우리는 바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처지를 철저하게 깨닫고 우리의 삶을 개척하면 이 바보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말하며 노동자들 스스로 자각하기를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평화시장 일대의 3만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근로기준법대로 준수되도록 투쟁할 것, 이를 위해 근로기준법을 철저히 연구하고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연구할 것, 노동실태를 조사할 것 등을 목표로 근로 개선을 위한 노동운동에 임했습니다. 노동실태 조사를 위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당시에 설문에 답했던 평화시장 노동자들 중 95%가 하루 14-16시간 노동하고 있었고, 96%가 폐결핵 등 기관지 계통의 질환에 걸려 있는 현실을 보고해서 당시 신문보도도 크게 나왔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한국 산업계는 가장 값싼 노동자들의 노동을 집약적으로 활용해서 수출에 매달리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이 같은 요구는 묵과되었습니다. 이에 전태일과 노동자들은 그해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하자고 계획세웠습니다. 실행되지도 않을 근로기준법을 화형시키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기업가들과 정부에게 노동자 근로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비판적인 행위를 보여 주려던 의도였습니다. 11월 13일 오후 1시, 근로자들과 경찰 사이의 대치 끝에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근로기준법의 실행을 외쳤습니다. 불길이 꺼진 후 다시 있는 힘을 다해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는 마지막 말을 토해냈습니다.
전태일의 50년 전 분신은 남한의 노동권 개선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지표로 기록됩니다. 이후 70-80년대를 거치며 남한 경제의 비약적 발전은 전반적인 노동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제공해줬습니다. 동시에 전태일과 그의 동지들의 힘겨운 노력과 연구로 정치권, 기업, 노동자들 사이에 근로권에 대한 인식도 점차로 발전해 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전태일의 분신은 남한의 근로권 개선과 실행의 속도를 10년은 앞당겼다고 합니다.
북한도 사회주의 노동법이 있고 그 내용은 전태일 시기의 남한 근로기준법과 마찬가지로 내용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1970년대 남한의 근로기준법처럼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으니 문제지요. 최근 북한은 80일 전투에 바쁜 상황입니다. 북한당국은 ‘사회주의강국건설을 힘있게 추동해’나가기 위한 ‘돌격전, 철야전’을 하라고 주민들을 다그치며 노동계급의 자력갱생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지시한 이상 우리 북한의 노동자들은 말그대로 밤낮없이 집중적으로 노동에 임해야 할 것이기에 걱정입니다. 철야전을 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사회주의 노동법의 8시간 노동 규정의 위반이자 근로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한다는 규정에도 어긋납니다. 또한 끊임없이 진행되는 80일, 100일, 200일전투 같은 무임금 노력동원이 아니라 전반적인 산업의 활성화와 국제적 협력을 통한 발전을 만들어 나갈 전략적 고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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