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모든 나라에는 다 있는데 북한에만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물론 인터넷이 북한에만 존재하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겠지만 오늘 말씀드릴 얘기는 다른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인권운동과 인권활동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나라인 미국이나 사회 복지시설을 가장 잘 갖춘 서유럽 국가들로부터 독재국가로 심각한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는 미얀마나 사회주의 국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쿠바까지, 전 세계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 국민들의 인권문제의 해결과 개선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인권활동가 또는 인권운동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북한에만 인권활동가들이 존재할 수가 없지요.
북한당국은 인권에 대한 논의를 국가체제를 뒤엎으려는 시도라고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유엔 총회나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권고하는 목소리를 높이면 북한당국은 체제를 전복하려는 반 공화국 모략 세력의 음모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20년 넘게 변함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북한 사회에는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가 없는 환경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국민을 위한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 또는 사회주의 이념이 투철했던 나라, 그 어디에서나 국가 행정체계 때문이든 일반 개인들 사이에서든 인권유린 행위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해결책을 찾기 위한 국가적인 체계가 잡혀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이에 따라서 그 나라의 인권 수준이 달라집니다. 대부분 국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협약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도 만들고요. 민간차원에서는 인권운동가들의 활동을 보장하고, 심지어는 국가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북한도 이제는 이와 같은 체계를 갖추고 인권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금기하는 인권활동, 사회주의가 태동한 나라 러시아에서는 스탈린 시절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지난 8일에 91세의 러시아 인권활동가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요. 루드밀라 알렉세예바라는 인권운동가입니다. 러시아 인권운동 역사의 원로이자 러시아의 양심이라고 불리며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권활동가였습니다. 스탈린 시절부터 인권운동을 했던 분인데요. 스탈린이 사망하던 해 알렉세예바는 25세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태어나 살았던 그 체제에서 얼마나 심각한 부당한 일들이 횡행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거짓말들이 난무했는지 우리는 다 목격했습니다”라며 당시 엄혹하고 공포스러웠던 전체주의 시절을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알렉세예바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연방 공산당에 가입했습니다. 1969년 소련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옹호하는 서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공산당에서 제명당합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비밀리에 ‘시사신문’이라는 소련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에서 일합니다. 이 언론사는 북한의 보위부에 해당하는 KGB가 국민을 통제하고 감시함으로써 발생하는 인권유린에 대해 기록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후 1976년에는 모스크바헬싱키그룹이라는 인권단체를 창립하게 되는데요. 이 단체는 소련연방이 1975년에 체결한 헬싱키조약의 내용을 잘 준수하는지 살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헬싱키조약은 유럽지역의 안보와 협력을 위한 범유럽 국가들과 서방국가들의 평화조약으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역사적인 시도였습니다. 조약내용은 대부분 지역 및 국가의 안보문제에 대해서 약속하는 것이었는데요. 여기엔 인권에 대한 약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헬싱키조약 7조는 ‘사상과 양심, 종교와 신념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존중한다’입니다. 알렉세예바가 창립한 모스크바헬싱키그룹은 소련당국이 헬싱키 조약 7조를 잘 지키는지 감시하는 일을 했던 겁니다.
그후 모스크바헬싱키그룹에 대한 소련당국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알렉세예바는 수도 없이 체포되고 심문을 받았습니다. 급기야 1977년에는 소련에서 추방돼 미국으로 망명하게 됐습니다. 물론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에 1993년 다시 본국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러시아의 인권과 시민적 권리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특히 러시아 헌법 31조가 명시한 평화적 시위와 집회에 대한 자유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구의 몸을 이끌고 거리로 뛰어 나와 시위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알렉세예바는 이제 러시아를 넘어서 전 세계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알렉세예바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소련에도 존재했고 러시아에도 열심히 활동하는 인권운동가가 있는데 왜 북한에만 인권활동가들이 존재할 수 없는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스탈린 시대부터 엄혹한 냉전의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 인간 존엄성과 인권의 가치를 위해 한결같이 투쟁해온 위대한 인권활동가 루드밀라 알렉세예바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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