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아웅산 수치의 사례를 반면교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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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물은 변합니다.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본다면 인류 변화의 방향은 물론 진보를 향하고 있습니다만, 단기적 안목으로 관찰해보면 변화의 방향은 진보도 될 수 있고 퇴보도 될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에 유엔 제 73차 총회에서 투표도 없이 세계 모든 국가들의 합의로 북한인권 결의안이 통과됐습니다. 북한인권 결의안을 유엔에서 채택한 것이 올해로 14년째고요. 회원국가 전체 합의로 투표 없이 통과된 것이 이번에 다섯 번째입니다. 이 말은 북한인권 결의안에서 우려를 표시한 주민들의 인권유린 상황이나 문제의 개선을 위해 당국에게 제안한 권고내용들을 유엔 회원국가 등 전 세계가 지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유엔 총회 본회의에서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북한인권 결의안은 적대세력에 의한 정치적 음모의 산물"이며 “북한에는 인권결의안에서 언급한 인권 침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지난 14년간 북한인권 결의안이 유엔에서 채택될 때마다 나온 똑같은 북한당국의 반응인데요. 한치의 변화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북한 인권상황에 개선의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아직은 많이 미흡하지만 시장을 통해서 작지만 주민 생활에 자율적 선택권이 주어지고 있는 모습들이 희망을 갖게 만드는데요. 그도 그렇지만 세상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이 채택되던 날 또 다른 뉴스보도 하나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남한의 광주 5.18기념재단이 미얀마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수여한 광주인권상을 철회했다는 보도였습니다. 5.18기념재단은 2004년에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높게 평가해 아웅산 수치에게 광주인권상을 수여한 바 있습니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의 정치인으로 사실상 총리와 같은 직위인 국가자문역을 맡고 있고 동시에 외교부 장관이기도 합니다. 행정적으로 미얀마의 최고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난 1년 넘는 기간 동안 미얀마 당국은 종교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학살하고 탄압했는데요. 아웅산 수치는 이를 저지할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인한 인권유린을 방관했다는 이유입니다. 이미 지난 11월에는 국제적인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날이 같은 이유로 2009년에 수치 여사에게 수여한 ‘양심대사상’을 철회했습니다. 그 외 캐나다, 영국 등에서도 수치 여사가 미얀마 인권과 민주화에 기여한 노력을 인정해 영예시민권을 수여한 적이 있었는데 이 또한 다 철회했습니다.

2000년 초반 수치 여사에 대한 국내외적인 존경과 명성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불명예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아웅산 수치는 평화와 용기,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비폭력 투쟁의 상징이었으니까요. 1988년 8월 8일 미얀마에서 장기간의 군부독재에 반발해 민주화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8888항쟁이라고 부르는데요. 대학생들과 승려들이 주축이 돼 전 국민이 반독재 민주화를 외쳤습니다. 수치 여사는 오천만 군중 앞에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설 것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8888항쟁의 중심에 뛰어들었습니다.

민주화 항쟁은 불행히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수치 여사는 이후 2010년까지 가택연금에 들어갔습니다. 군부정권은 수치 여사가 정치적인 활동을 할 수 없도록 집 밖으로 나올 수 없게 자택에 가둬두고 감시했습니다.

아웅산 수치는 2010년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가택연금에서 풀려났고 2012년에 미얀마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치가 이끄는 당이 승리하면서 정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5년 총선에서는 미얀마 의회 의석의 86%나 휩쓸고 그 다음해 대통령 선거에서 수치의 당 후보가 당선 된 후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됐습니다.

아웅산 수치는 가택연금 중이던 1991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습니다. 노벨상 위원회는 수치 여사의 투쟁은 아시아 시민의 용기에 가장 뛰어난 모범이며 압제에 항거하는 투쟁의 중요한 상징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최근 로힝야족 탄압으로 수치 여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높아지면서 노벨상 위원회는 노벨평화상을 되물리지는 못하지만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데요. 인간존엄성의 가치와 윤리의 숭고한 정신입니다. 이에 기초해 인권 옹호자로 존경 받던 수치 여사가, 지금은 인간 존엄성을 말살한 이유로 국제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까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사례는 북한 당국에게는 반면교사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주민의 인권문제를 지금 김정은 정권 당대에 해결한다면 그리고 국가를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궤도로 올린다면, 북한의 현 지도부는 북한을 진보로 이끈 주체로 역사의 기록에 남게 되겠지요. 북한이 변화의 동력을 받고 있는 지금이 적기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