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 해가 시작됐습니다. 올해도 ‘신년사’를 대체하는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가 나왔습니다. “국가의 부강발전과 우리 인민의 복리를 위하여 더욱 힘차게 싸워나가자”는 제목에 걸맞게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안건과 계획들로 가득한데요. 산업과 경제 뿐 아니라 과학연구, 교육 부문 등 거의 모든 부문의 핵심적 가치로 ‘인민 생활 향상’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기본과업으로 ‘5개년계획수행을 위한 확고한 담보를 구축하고 국가발전과 인민 생활에서 뚜렷한 개변’을 이루자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경제 부문에서 금속공업, 화학공업, 전력공업, 석탄공업 부문 등에서 획기적인 전진을 이룩하라고 당부했는데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나 전략들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인민들에게 안정되고 향상된 생활을 제공하는데 총집중’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다만, 산업부문의 전진을 위해 오직 인민들에 의존해서 전 인민들이 파철, 파고무, 파지를 제출해야 하는 경제과제와 노력동원의 부담이 더 커질까 걱정입니다. 이건 당국이 추구하는 ‘인민 생활 향상'을 저해하는 요인이란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칭찬하고 싶은 조치 중 하나는 학생들을 위한 것인데요. ‘교복과 가방을 모든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공급’하는 것을 당중앙위원회의 중대조치로 제기한 점입니다. 북한이 무상교육을 자랑하지만 실제로 모든 교육 부담과 교사들의 생계까지 학부모들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학교 가지 않는 학생들이 15%나 되는 현상은 심각한 아동 권리의 유린입니다. 이번 조치로 학교를 포기한 취약계층 아동들의 부담을 덜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만한 정책이 있는데요. ‘협동농장들이 국가로부터 대부를 받고 상환하지 못한 자금을 모두 면제할데 대한 특혜조치'입니다. 많은 농장들은 해마다 국가에 갚아야 할 빚 때문에 불만이 컸습니다. 국가에 대부도 갚고 군량미도 떼고, 내년 농사를 위한 농장 몫도 남기면, 가을에 수확해도 농장원이 가져갈 몫은 형편없이 적었습니다. 이번 조치가 빚으로 힘들었던 농민들이 그나마 활기를 찾을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농촌 부채는 한 해 대부면제로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비료와 농기계를 값싸게 제공할 방도가 마련돼야 그다음 해 부채도 가벼워지고, 그래야 농장 수확물이 농민들의 생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금성뜨락또르공장의 마력수가 높은 뜨락또르’를 가난한 협동농장들에 제공하는 정책을 내왔지만, 값비싼 북한산 뜨락또르 공급은 더 큰 빚더미 위에서 한 해 농사를 시작하라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협동농장들이 10배나 더 값싼 값으로 중고 농기계를 중국이나 한국에서 들여다 쓰도록 허락하는 것이 농장을 빚의 악순환에서 해방시키는 현실적 방안입니다.
전원회의 보고에는 이런 몇 가지 긍정적 정책도 있었지만, 사상혁명과 정치사상적 강화가 크게 강조됐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바쁜 일상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농촌이나 일반 도시 근로자들에게 경제 전반의 활기를 기대한다면 ‘사상, 기술, 문화’의 혁명을 다그칠 것이 아니고, 근로자들 스스로 변화 발전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존중받으려는 욕구와 창조에 대한 보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반대로 내 주위 상황이나 일들을 스스로 통제, 조절을 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무기력증에 빠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심리상태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계획한 것을 실천해서 생활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왔다면, 그 자체가 창조에 대한 큰 성취감을 주고, 그 성취감은 좀 더 큰 시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의 성취감이 내 주변까지 개선시킬 수 있다면 더 큰 활력으로 작용합니다. 애써 농사지었지만 수확물은 가져갈 수 없고 빚더미에 허덕이고, 그다음 해도 노력했지만 여전히 내 생활을 내가 조절해서 변화를 만들 수도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 피로감과 무기력이 심화되는 건 당연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경제적 활기를 기대한다면 사상 혁명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생활의 작은 변화라도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게 자율과 기회를 주는 것이 선차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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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