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장벽을 넘어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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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은 ‘정면돌파전’의 정신을 인민들의 의식 속에 심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5일 로동신문 론설은 “자력갱생의 위력으로 적들의 제재봉쇄책동을 총파탄시키기 위한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인민들이 자기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국제사회와는 소통을 단절한 채 자력갱생의 책임을 인민들에게 떠 넘기는 모양새입니다. 같은 날 5일 남한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있는데요. 북한당국이 내세우고 있는 ‘정면돌파전’을 위한 흥미로운 교훈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2019년에 제작한 남한 영화 ‘기생충’이 미국의 대형 영화시상식에서 큰 상을 받았다는 소식입니다. ‘골든 글로브' 즉 황금지구본이라는 의미의 이 상은 미국 영화나 텔레비전 산업계에서 일하는 외국인 기자들이 수상작을 뽑는 상인데요. 고유한 미국적 정서에서 벗어나 예술성을 중시하는 권위있는 국제적 영화상입니다. 여기서 남한 영화가 ‘외국어 영화부문’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남한의 영화나 드라마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인기가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계신 사실입니다만,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고 예술적 수준도 인정 받아서 이번엔 미국에서 큰 상까지 받았습니다. 남한 영화가 원래 이렇게 수준이 높았고 남한의 영화산업이 원래 이렇게 발달했던 것일까요?

지난 해가 남한에서 스스로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을 시작한지 100년이 된 해라고 합니다. 지난 한 세기 간 남한의 영화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그리고 내용 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 발전 뒤에는 위기의 시간들도 있었는데요. 2006년 스크린쿼터제를 146일에서 73일로 줄였던 때가 남한 영화역사의 가장 큰 고난이었을 겁니다. 스크린쿼터제도란 선진적인 외국 영화 산업에서 남한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1988년 이후부터 영화시장의 개방으로 외국영화들이 대규모로 남한 땅에 들어오게 됐는데요. 한국정부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들어오는 잘 만든 영화들 때문에 남한영화 산업이 망할 것을 걱정해서, 남한의 극장은 1년에 최소 146일 동안은 반드시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1998년부터 한미 양자간 투자협정 및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조건으로 한국영화 보호정책을 축소 또는 폐지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정부는 나라 경제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영화보호 정책을 철회를 해야 했지만 영화배우들 등 영화산업계 종사자들은 영화계의 미국 식민지화를 반대하는 거대한 집회를 열고 저항했습니다. 결국 2006년 남한 정부와 영화산업계는 남한 영화 보호 상영일수를 73일로 축소하는 것으로 타협했습니다. 그 후 한국영화는 미국 영화의 침략에 망해버렸을까요?

그렇지 않지요. 남한영화는 73일의 영화 보호 기간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발전하며 오히려 세계 영화계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50% 이상 극장에 남한에서 제작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일년에 최소한 73일간은 남한 영화를 상영해서 우리 영화를 보호하자던 규정이 아직 존재는 하지만 그 이상 상영되기 때문에 있으나마나한 규정이 돼 버렸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남한에서 천 만 명 이상이 봤던 영화 수가 전체 27편이라는데요. 그 중에 남한 영화인들이 제작한 영화 수가 19개랍니다. 그 만큼 남한 영화는 안정적이고도 거대한 산업 분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 북한에서도 유명한 배용준이나 이병헌과 같은 남한의 배우들은 미국 영화나 일본 영화계로 넘어가서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지난 5일 미국의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이제는 국제사회의 영화로 지구상 모든 영화 애호가들이 즐기는 영화가 됐습니다.

남한의 영화를 보호하겠다고 닫아 둔 문은 더 힘쎈 외세를 막는데만 작동했던 것이 아니라, 남한영화를 위해 필요한 양질의 문화적 영향력이나 기술, 창조적 생각들마저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남한 영화가 외국으로 통하는 규제의 턱을 낮춘 뒤 국제시장으로 진출한 경험에서 북한의 정면돌파전의 교훈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북한시장의 문을 걸어 잠근 뒤 그 안에서 주민들의 노력에만 의존하는 자력갱생으로는 선진적인 기술과 인류문명이 축적한 지식과 정보를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경제를 살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