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선진화와 현대화를 위한 융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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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전 세계 언론매체들은 미국 동부에 위치한 볼티모어의 한 병원에서 심장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데이빗 베넷이라는 57세 환자에게 이식한 것은 돼지 심장이었기 때문에 크게 주목했는데요. 베넷 씨는 수술 전에 ‘죽음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돼지 심장 이식을 선택해야 한다'며 돼지 심장 이식이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라고 말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2020년 한 해 장기 이식을 기다리던 환자 수가 약 3만 6천 명에 가까웠고요.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사람의 수는 하루 평균 4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미국 보건자원 행정국은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 수가 하루 평균 17명이라고 했습니다. 장기 이식을 원하는 사람 수가 공급할 수 있는 장기의 수보다 훨씬 웃돌고 있는 상황인데요.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최선책은 과학에 기대어 동물의 장기를 인체에 이식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상용화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술을 진행한 의사는 “이번 획기적인 수술로 우리는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 단계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평가했습니다.

돼지의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문제는 거부반응이 관건인데요. 인체에서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돼지 심장의 유전자를 변형하고 반응을 일으키는 당성분을 제거한 뒤 사람 유전자 형질을 추가하는 절차를 몇 차례 거친 후 인체에 적용한다고 전문가들이 설명합니다.

한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기 위한 연구들이 진행돼 왔는데요. 한국의 국립축산과학원은 돼지 심장이나 각막 같은 장기를 영장류, 즉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답니다. 2016년에 유전자 형질을 변형한 돼지 심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했고 원숭이는 60일간 생존했다고 합니다. 또 돼지의 췌장세포인 췌도 이식 임상실험을 하기 위한 신청서를 한국 정부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심사 중에 있다고 합니다. 2월 초에 결과가 나올 예정인데, 정부가 허가한다면 한국에서도 동물 장기의 인체 이식 임상실험이 진행되는 겁니다.

돼지는 새끼를 많이 낳는 동물이므로 돼지 장기의 인체 이식이 용이합니다. 이 실험이 성공해 일상적 활용이 가능해지면, 수많은 인명을 구하는 지름길이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기술적 문제 외에도 다른 복잡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한국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있어서 ‘인간 존엄과 정체성 보호’의 취지로 인간과 동물의 정자와 난자 수정을 금지합니다. 따라서 동물 장기 이식 관련 의료적 연구에 규제가 많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20년 9월에 첨단재생의료법이 시행되면서 국민 건강 및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할 목적의 기술혁신을 위해 일부 이종간 이식 임상 실험을 허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여론의 합의도 중요합니다. 윤리적, 종교적 문제와 동물의 생명권 보호에 대한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존엄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무엇을 우선 순위에 둬야 하는지, 현실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균형 잡힌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발전의 길에서 더 큰 이익과 더 높은 가치를 위해 규제에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데요.

이렇게 모순되거나 불일치하는 현상들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정치가 할 일입니다. 법률과 규제 때문에 혁신적 상상력과 기술적, 과학적 발전이 더 나아가지 못하는 예들이 일상에서 많이 발견되는데요. 융통성을 발휘해 더 많은 주민들의 생명을 살리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특별법을 도입한 것이 정치의 좋은 예로 보입니다.

지난 1일에 나온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를 보면, 북한당국은 출판, 체육 부문, 방역 및 영농기술을 위해서는 선진적 수준을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방과 금속공업부문, 교육환경과 축산기지 등에서 현대화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선진화와 현대화는 북한당국이 평소 주장하던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는 모순되는 개념입니다. 사회 여러 영역의 선진화와 산업 부문의 현대화도 국제사회 선진국들이 수 세기 동안 쌓아 온 과학과 기술 지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주민들이 얻을 수 있는 생활의 편의와 개선, 그리고 국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현대화와 선진화를 추구한다면 자력갱생을 잠시 내려 놓고 융통성과 유연성을 갖춘 정치력을 발휘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오중석, 웹팀: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