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126년 전에 발견한 조선의 잠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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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금액 이상으로 수입을 얻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 돈이 수중에 들어오면 돈을 땅 속에 묻거나 비밀에 부친다. 그러지 않으면 관리들이 곧바로 빼앗아 간다. 행정관이나 판사 역시 매수가 가능하므로 이런 일이 발생해도 법적 보호를 기대할 수는 없다…(중략)…관리들에게 뇌물을 지불하지 않으면 물건을 팔 수 없다. 도로 세를 내지 않고는 여행을 하거나 물건을 보낼 수도 없다. 사람들에게 하루 종일 일하도록 요구할 권한을 정부가 가지고 있는데 특정한 금액을 내면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최근에 제가 읽은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설명한 책일까요? 아닙니다. 이 책의 제목은 ‘조선, 1894년 여름’입니다. 책의 저자는 오스트리아 즉 오지리 사람으로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이라고 하는데요. 1854년 생으로 10대 후반기부터 남유럽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일본을 거쳐서 조선 땅을 둘러보고 여행기를 썼습니다. 외부사람의 눈을 통해 객관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비판을 나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토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한 오스트리아 사람이 쓴 여행기를 통해서 126년 전 조선왕조시절에 살던 사람들, 현 세대의 할머니들의 할머니들, 그들의 생활과 사회 모습을 관찰해 보려고 합니다. 패망을 10년 여 앞두고 있던 조선의 모습이 한 유럽 방문객의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서울에 처음 도착한 저자 헤세-바르텍 씨는 도시 전경을 둘러보기 위해 남산에 올랐습니다. ‘서울의 집들은 단순하고 황량한 황무지나 다름없다. 땅바닥과 거의 구분이 안 되는 납작한 잿빛 오두막 초가지붕 만 여 개가 공동묘지의 회색 봉분처럼 다닥다닥 늘어 서 있고 도로도 없고 건물이나 궁전도 없고 나무와 정원도 없다. 형언할 수 없이 슬프면서도 기묘한 광경이다'라고 묘사했습니다. 서울 전체에 2층 높이 건물은 두 세 채에 불과하고 굴뚝도 없고 가로등도 없으며 거리는 온통 오물 천지라고 표현합니다. 그럴 듯한 건축물은 성곽 밖에 없지만 서울로 들어가는 성곽은 곳곳이 무너져 있는데 수리할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조선에서는 개선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남성들이 일하는 것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남자들은 집 안이나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긴 담뱃대로 담배만 피며 놀거나 잠만 잔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여성들은 밤낮 없이 일만하고 모든 노동은 여성들의 몫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선 남자들은 노예를 갖기 위해 결혼하는 것 같다며 여성 대상의 심각한 인권유린을 묘사했습니다. 조선 남자들이 일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은 앞서 설명처럼 돈을 벌면 관리들에게 뺏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관리들의 탐욕이 조선을 멸망으로 이끌었다며 돈벌이가 되는 자리는 관리들 손에 있고, 고위급의 관직을 얻는 것도 그리고 처벌에서 면죄 되기 위해서도 관리들을 뇌물로 사면 된다고 합니다.

여러 전근대적인 문제들이 심각했지만 가장 심하게 보였던 것은 재판과 처형 관행이었습니다. 정치범의 경우는 죄인의 사지를 황소들이 사방으로 잡아 당겨서 찢어 죽이는 방식의 공개처형을 집행했다며 이는 다른 주민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또 죄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온 가족이 유배를 가거나 연좌제로 처형되기도 합니다. 일년에 30-40회의 처형이 공개처형 장소에서 집행 되었답니다.

저자는 당시 문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조선의 지도부가 가장 책임이 크다고 봤습니다. 조선사람들은 ‘가난하고 무지하며 게으르고 미신을 신봉하고 이방인을 꺼린다. 하지만 이러한 속성들은 탐욕스러운 정부 탓에 생긴 불행한 결과일 뿐이다. 조선 사람들의 내면에는 아주 훌륭한 본성이 들어 있다. 진정성이 있고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만한 것을 이루어 낼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비참한 저개발의 문명에서도 조선의 인민들 속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조선사람들은 육체적으로도 일본인과 중국인에 비해서도 우수하며 사고는 융통성이 있고 행동은 탄력적’이라고 말합니다.

126년이 바람처럼 흘렀고 그간 한반도에는 기적 같은 마술이 펼쳐졌습니다.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불결하기 짝이 없는 진흙으로 지은 침침한 초가집들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찾아 볼 수 있고 일년에 마흔 명씩 공개 처형당하던 지역은 아스팔트가 깔리고 고층건물이 들어섰으며 현대적인 법집행이 이뤄지고 있고 사형집행을 그만둔지는 20년이 넘었습니다. 조선사람들은 제대로 된 정치만 들어선다면 엄청난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저자는 126년 전에 예상했습니다.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126년 전에 조선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잠재력은 남쪽 지역이나 북쪽 지역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한반도 북쪽 지역 사람들의 잠재력이 아직도 우리 인민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정치와 제도가 마련만 된다면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더 빨리 정상 궤도에서 달릴 수 있는 잠재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