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북한당국의 사회정의 실현 방안

0:00 / 0:00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바로 뒤이어 조직된 국제기구가 있는데요. 국제노동기구 ILO입니다. 1919년 10월에 창립됐으니 올해로 100년 즉 한 세기를 맞이합니다. 국제노동기구는 자유, 평등, 안보,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는 조건에서 건전하고 생산성있는 직업을 남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제공할 목적으로 ‘국제노동기준’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국제적 노동기준을 마련한 의도는 비인간적인 노동관행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것이며 도덕적 기준에서 가장 원초적인 인권을 보장하려는데 있습니다. 또 국제 노동기준은 지속적인 평화유지에 기여하고 국제 시장경제에서 과도한 경쟁의 부정적 영향을 감소시켜서 국제사회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정적으로 그리고 존엄성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노동과 직업을 이야기 하면서 인권과 평화, 인간 존엄성을 논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재임 중 ‘2014년 세계정의의 날’ 행사에서 그 해답을 내놓았습니다. “경제적 성장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상 잘 알고 있습니다. 건전한 일자리를 통해서 개개인의 능력을 강화하며, 사회보호 제도를 통해서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건전한 일자리를 통해 경제적 부를 만들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의 안정과 정의, 발전을 다음 세기까지 이어 나가자고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국제노동기준의 핵심은 북한의 사회주의 노동법의 1장 1조에서 설명하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사회주의 노동은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된 근로자들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노동이다. 근로자들은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복리와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자각적 열성과 창발성을 내여 일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근로자들이 착취와 압박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경제활동을 해서 안정된 사회와 근로자 개인의 행복과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사회주의 노동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북한 근로자들의 실제 근로환경이나 제도는 사회주의 노동법에서 표현한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무산광산 근로자들 50여 명이 한꺼번에 노동단련형을 받았다는 보도가 남한까지 전해졌습니다. 양력설을 지내고 나서 출근하지 않는 근로자들을 처벌한 겁니다. 한때 무산광산은 중국수출을 위해서 근로자 로임까지 인상하며 활발하게 일하는 광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년 국제규정을 위반한 북한당국의 핵개발이 원인이 된 유엔 안보리의 제재 때문에 수출이 막혀 무산광산의 생산도 거의 중단됐습니다. 이 때문에 월급도 못받는데다 할 일도 없어진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다른 일을 찾아나서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법은 생산성 없는 직장이라도 노동자들을 묶어두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불필요하게 희생자가 된 겁니다. 이건 북한의 행정처벌법에서 ‘무직건달행위’를 처벌하게 돼 있는 제도 때문이지요. 모든 성인들을 무조건 직장에 묶어둬서 사상과 정치생활 그리고 개인생활을 통제하는 동시에 경제생산을 도모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회주의 노동법에서 말하는 ‘착취와 압박’이며 개인의 창발성과 자각적 열성을 죽이는 제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북한당국의 지시와 통제를 피해서 북한 근로자들의 창발성을 자랑할 만한 보도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사교육이 등장했다는 보도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있었는데 최근에는 외국어와 예술과목까지 사교육이 확대되고 수요도 늘었다고 합니다. 학교 교원들이 공식 인건비를 받으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개인교습을 시작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경제활동입니다. 개인 가정교사의 한달 수업료가 200달러에 달한다니 교원 한달 월급의 5백 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또다른 뉴스보도는 손전화 사용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편의를 제공하는 직업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손전화로 돈을 송금하는 중개업자가 나타났다는데요.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화 통화시간이 늘어나면서 전화돈을 상대방에게 넣어주고 그 전화돈을 현금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현대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돈벌이를 하려는 주민들의 창발성과 자율성이 커지니까 선진국에서 이뤄지는 경제활동 방식도 자연스레 북한에 도입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북한당국의 통제와 규제가 미치지 않는 경제분야에서는 주민들의 창발성이 성장해서 새로운 양호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제분야에서 당국보다 주민들이 한단계 앞서 나가는 모습인데요.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건전한 일자리를 찾아서 경제생활을 하고 있으니, 북한당국이 할 일은 배치된 직장을 떠나서 자유로운 경제생활을 하는 근로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근로기준의 의도에 맞게 사회정의의 원칙에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데 관심을 더 기울이는 것이 오히려 좋겠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