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기술신비주의 청산하는 길

새해가 들어선 후 ‘기술신비주의’ 또는 과학기술중시’ 같은 용어들이 유독 노동신문에 자주 등장합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 8기 제 6차 전원회의 보도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뤘기 때문인 걸로 보입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자립의 사상을 철저히 구현하며 패배주의와 기술신비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강하게 투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낡은 사상경향’이 아직도 경제일꾼들 속에 남아 있다고 질타했다고 하죠. 따라서 북한은 새해를 맞아 ‘과학기술중시’와 ‘기술신비주의’ 타파를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기술신비주의를 ‘과학기술을 홀시하거나 경시하는 것’을 넘어서, 특정 기술자나 과학자만이 과학과 기술을 알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전을 전문가만의 역할로 생각해서, 기술을 신비화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이러한 경향은 ‘일반 대중들의 창조적 힘과 지혜를 무시하는 그릇된 관점과 태도’라고 비판합니다. 그 결과 남의 과학과 기술만 우상화하고 숭배하게 되어 자기 실정에 맞게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려 하지 않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도 과학적 사고를 하고 과학기술을 잘 활용해 자력갱생에 이바지 하라고 독려합니다.

북한당국은 8차 당대회에서 국가발전 5개년계획을 내놓고 올해 3년 차를 맞이하며 ‘2023년을 국가경제발전의 큰 걸음을 내짚는 해, 생산장성과 정비보강, 전략수행, 인민생활 개선에서 관건적인 목표들을 달성하는 해로 규정’했는데요. 하지만 아직 국가적 경제를 일떠세울 사회적 체제가 체계적이지 못하고 국가경제의 제반 시설이 여전히 현대화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거기다 일꾼들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적 사고와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실태이지요. 거기다 ‘기술신비주의’에 대항한 투쟁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도 북한주민들에게 허용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로동계급과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낡은 사상경향을 청산하라’고만 강조하니 그 목소리가 허망하게만 들립니다.

일반 노동자들과 말단 기술자들이 일상적으로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고 과학기술에 근거해 작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 관련 정보들을 근로 환경과 생활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특히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는 정보 공유가 혁신적인 생각의 창출과 개발에 근간이 됩니다. 그러나 북한의 사회에서 과학기술 정보의 원활한 유통이 가능할까요?

며칠 전 노동신문의 기사에서 한 가지 예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은률광산 서해리 분광산개발이 이제 마무리 단계라는 기사가 있었는데요. 기사는 분광산 개발과정에 난관이 많았지만 ‘나선분급기’를 자체 개발해 넉 달만에 해내면서 노동자와 기술자들이 크게 고무되었다고 자랑했습니다. 10여 미터나 되는 나선축의 동심도를 과학기술적으로 정확히 보장하는 것이 현존하는 설비로는 불가능했지만 은률광산 노동자들은 자체의 힘으로 분급기를 개발해서 넉 달만에 생산했답니다.

한국의 한 기계설계 전문가는 이런 정도의 분급기라면 10미터가 아니라 100미터 이상 길이도 레이저 기술을 이용해 손쉽게 제작 가능하고 설계도나 제작 방법 등 관련 정보가 인터넷에도 다 올라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기사가 1960-70년대의 상황에 대한 것인지 의아스럽다며 그 당시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과거 북한의 탄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탈북민 북한 전문가는 본인이 일하던 1980년대에도 이처럼 탄광 노동자들이 분급기 등 광산에서 필요한 기계들을 자체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증언합니다. 광산에서 활용할 기계설비들을 전문 공장기업소에서 제작해서 공급하면 될 일을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원시적인 방식으로 제작하게 되니 넉 달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기술신비주의’를 청산하려는 노동자와 기술자들의 노력을 칭찬하는 기사를 썼지만 오히려 북한 산업부문의 비과학적이고 비효율적인 현실을 폭로한 격이 돼버렸습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게 광산 부문의 사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요구하는 바가, ‘기술신비주의’를 타개하고 기술과 과학 분야에서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 누구나 과학적 사고를 하라는 것인데요. 그 방법은 오히려 쉽습니다.

북한도 2008년 이집트의 회사인 오라스콤과 협력으로 인트라넷을 설치했습니다. 그 인트라넷을 적극 활용해서 산업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 과학 기술들을 누구라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공유하면 됩니다. 그리고 간편한 애플리케이션 즉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필요한 편의 봉사와 정보와 지식들을 손전화로 쉽게 접근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것이 ‘기술신비주의'를 청산하는 지름길입니다. 이것을 허용하지 않으니 노동자들은 원시적인 방식으로 기계들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서 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궐기대회를 조직해서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주민들이 과학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반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어떨까요? 인터넷은 지금 단계에서 무리라면, 최소한 인트라넷만이라도 활용해서 기술과학 정보 공유를 허용하면 됩니다. 그렇게만 되면 손재간 많고 적응력 뛰어난 북한의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은 노동당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기발하고 혁신적인 기기들을 제작 생산하고 유통시켜 ‘생산장성과 정비보강’은 물론 산업 부흥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