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문화를 누릴 권리와 사상과 표현의 자유

0:00 / 0:00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있는데요. 북한도 가입한 유엔의 규약입니다. 이 규약의 19조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선언합니다. 19조의 1항은 모든 사람은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자신만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했고요. 2항은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합니다. 어떤 정보나 생각이든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추구하고 받아들이고 또 전달할 수도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정보나 생각들은 말이나 글, 출판물이나 혹은 다양한 형태의 예술 행위, 어떤 매체를 통하든 상관없이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단 국가안보와 공공질서나 도덕, 보건 등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법으로 규정해서 일정 정도의 제한을 두어서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게 조건을 달았습니다.

또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여기의 15조는 당사국의 모든 시민들은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규약도 북한이 가입해서 비준했기 때문에 북한도 당사국이므로 여기서 규정하는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를 북한 주민들도 당연히 보장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 드릴 주제는 두 가지 기본적인 국제규약이 선언한 권리 즉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와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인데요.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석해 응원하고 있는 북한 응원단이 국제적인 조명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제적 관심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북한응원단이 평창올림픽의 개회식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응원하는 경기에서도 남한사람들과 세계시민들과는 호흡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발전하고 있는 세계 문화의 조류를 북한당국이 차단해서 북한사람들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남북한 단일팀의 응원을 위해 북한당국은 230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응원단을 평창으로 파견했습니다. 또 140여 명의 단원과 관계자를 편성한 삼지연 관현악단도 남한으로 보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강경 제재에 우회로를 마련해보자는 북한당국의 절박한 심정 그리고 대화와 접촉의 기회를 마련해 한반도 긴장국면을 평화국면으로 전환하자는 남한정부의 의도가 만들어낸 합작품이 바로 북한응원단과 삼지연 관현악단의 남한 방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에 있었던 남자 쇼트트랙 1,500미터 경기, 남북한 단일팀으로 출전한 여자 아이스하키의 두 차례 경기에서 북한 응원단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230명의 응원단원들이 한 사람처럼 손뼉치고 한 목소리로 ‘우리는 하나’를 외치며 기계처럼 똑같은 몸짓으로 율동을 보여줬습니다. 삼지연 관현악단은 8일과 11일 각각 강원도 강릉과 서울에서 공연을 하고 북측으로 돌아갔습니다.

남과 북 당국의 의도야 어찌되었든 북한의 문화예술인들이 대한민국이 주최하는 세계인의 잔치인 올림픽에 참석해서 흥을 돋구는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응원과 예술공연의 순수한 취지는 분명 올림픽 분위기를 띄우기 위함일텐데 정작 현장분위기와는 어울리지 못하고 관객들과 호흡을 맞춰 소통하는데도 성공적이진 못한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공유되고 있는 북한 응원단의 영상이나 응원단에 대해 쓴 외국 언론의 기사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영국 신문은 북측의 응원을 ‘우스꽝스럽게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묘사했습니다. 또 “겉으로는 꽤 재밌게 보이는지 모르지만 경기장에는 의아함과 곤혹스런 분위기가 있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남한 관객들이나 다른 응원단들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다른 외국 언론은 북한응원단은 지휘자의 지시 없이는 노래 한구절도 부르지 못했고 박수도 한번 치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기계같이 똑같은 행동을 했다며 매사에 통제받고 있는 응원단원의 고충에 대해서도 지적했습니다. 독일의 언론사들도 유사한 평을 했습니다. “독특한 형태의 응원이 올림픽 개회식 때부터 분명히 드러났다”면서 모든 관중들이 현장 분위기와 음악에 맞춰서 주최측이 나눠준 불빛을 들고 흔들어서 어두운 올림픽 경기장은 별들이 초롱초롱한 밤하늘 같았는데 북한응원단이 앉아 있는 곳만 예외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한국인 기자는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축제인데 북한응원단의 관중석만 고립된 느낌이 들어서 측은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심지어 한 외국 언론은 응원단을 보낸 것 자체가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여성들을 이용하는 성차별적인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한 외국인 관객은 1960년대 구소련과 당시 중국의 공연을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당국이 대규모 응원단을 남쪽으로 보낸 것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부터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 대회였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북한 사람들과 북한문화를 접해본 적이 거의 없는 남한사람들의 눈에는 북한의 응원문화가 이국적이고 신선하기까지 했습니다. 나아가 분단된 남과 북이 한 경기장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감격이었습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의 남한사람들 눈에는 북한의 예술과 응원문화가 더이상 신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민족적 감수성에만 기대어 여전히 남한 사람들의 감격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남한 젊은 세대들의 눈에는 할머니 세대들이 즐겼을 법한 공연과 응원방식에 더이상 호응할 수가 없습니다.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북한의 문화는 여전히 그 전과 똑같습니다. 북한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와 고립돼 있고 남한음악이나 서구 문화를 즐겨서도 안 됩니다. 남한과 세계의 문화는 서로 만나서 교류하고 진화하고 변화 발전했는데 북한만 그대로입니다. 그런 현실을 지금 평창에서 다른 관객들과는 섞이지 못하는 북한 응원단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문화를 즐길 권리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면서도 평창올림픽에는 응원단과 예술단을 보내서 북과 남의 문화교류를 통해 민족 화합의 장을 마련하자는 북한당국의 주장은 모순이자 논리적 오류입니다. 북한사람들이 즐기고 싶어하는 남한문화, 미국문화, 유럽문화 그리고 전세계 고전문화까지 다 즐기도록 허용하면서 북한의 문화도 세계의 문화흐름과 함께 흘러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북한 사람들도 문화를 즐기고 또 원하는 형태의 예술로 표현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유엔의 규약에 가입한 당사국이 주민들에게 보장해 줘야 할 북한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