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로 독일 분단의 상징물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28년하고도 2개월이 지났습니다. 1961년에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장벽이 세워져서 1989년 통일 전까지 독일을 동과 서로 분리시켰습니다. 이 분단역사의 기간 즉 베를린장벽이 존재한 기간이 바로 28년 2개월이고 통일 이후 지금까지 시간도 28년 2개월이랍니다. 이제 독일은 분단의 역사보다 통일독일의 역사를 더 길게 쓰고 있습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구소련의 연합국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됐지요. 베를린의 위치는 구 소련의 영역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지만 4개 연합국이 4개 영역으로 나눠버렸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분단은 구소련과 미국 중심의 서방세계와의 냉전 갈등 속에서 고착됩니다. 1961년에 처음 축조돼 높이 3.6m에 길이가 총 155km나 되는 콘크리트 장벽이 28년 이상 동서독을 이념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갈라놓았습니다. 이 기간동안 10만 명 이상의 동베를린 시민들이 서베를린으로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 중 5천 여 명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에 성공했으나 안타깝게도 140명이 탈출 중 사망했다고 전합니다.
변화는 1989년에 왔습니다. 구소련의 지배 하에 있던 동유럽 국가들에서 시작된 연쇄적인 혁명바람이 동독까지 불어왔습니다. 폴란드와 헝가리의 혁명으로 동독도 불안한 시기를 보냈고 급기야 호네커의 뒤를 이은 에곤 크렌츠 동독 원수가 1989년 11월 9일에 동독시민들의 동서독 왕래를 허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시민들의 평화적 저항운동으로 독재정권을 극복한 역사적 사례”라고 꼽습니다. 이날 저녁부터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28년 2개월의 분단역사를 마감한 겁니다. 이제 28년 2개월을 넘어 통일독일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분단의 시간만큼 통일의 시간을 보낸 독일은 온전한 통일을 이뤘을까요?
분단 당시 베를린 시장이었던 빌리 브란트는 통일 시기에는 좌파성향의 정치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동서간의 신속한 통합을 추구했습니다. 브란트는 통일을 맞이하며 “이제는 양측 모두에 속한 것들은 다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통일된 독일은 동서독의 경제적, 정치적, 이념적 격차를 좁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제가 몇 차례 방문했던 현재 독일의 모습에는 분단의 흔적이 크게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분단의 흔적이라면 베를린에 있는 장벽박물관과 다양한 전시관 그리고 기념비적으로 남겨둔 장벽의 일부가 다입니다. 제 눈에 보인 독일은 전 지구를 발전으로 주도하는 선진국가로 보여 부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가 내부의 상황은 제가 본 것과는 좀 다른가 봅니다.
지난주 미국의 가장 큰 진보적 언론사인 뉴욕타임즈가 독일통일과 분단역사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현재 독일은 통일 후 28년을 보냈지만 분단의 갈등은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우려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신문은 동베를린의 마지막 시장이었던 토마스 크뤼거 씨를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요. 크뤼거 전 시장은 “독일의 통일은 아직까지 진행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콘크리트 장벽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통일독일의 모든 역사나 문화 등 이야기 서술의 중심은 서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동독의 이야기는 사그라졌다고 말합니다. 제도권 내에도 서독출신이 중요한 역할과 직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검사, 판사, 공무원들 10명 중 8명 정도가 서독출신이라고 합니다. 그 차이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고 정치적인 차이로 표출 되는데 동독 출신 시민들은 점점 더 국가주의적인 성향을 띄고 있어 우려스럽답니다. 동독 출신 시민들은 전국적으로 더 극단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고 최근 독일 의회에 진출한 극우파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 당은 동독의 작소니 주에서 최초로 등장했고 다른 주보다 득표율이 두 배나 높을 정도로 극단적 우파의 성향을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독일의 진보적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일부 독일 시민들의 극단주의적 우파성향이 독일사회 혼란이나 나아가 국제적 갈등을 초래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통일 이후 28년 이상의 시간을 독일은 동서독 지역의 화합과 동반성장, 동서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28년간 벌어졌던 분단의 상처를 같은 기간 동안 통일의 치유로도 온전히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65년째 분단의 역사만을 쓰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 기사를 보고 남한사회에서 탈북민들이 겪는 정서적 문화적 이질감을 떠올렸습니다. 나아가 한반도 미래에 있을 통일을 그려봤습니다. 28년 통일의 시간으로도 극복하지 못한 분단의 상처를 한반도 70년 분단의 상처는 몇 년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요. 머리가 아득해집니다.
관념적으로만 접근해 보자면 남북의 차이를 차이의 갈등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와 동반할 수 없는 반인도범죄와 각종 인권범죄가 자행되는 북한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법치와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성이 보장되는 일반국가, 정상국가가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인권범죄 국가에서 벗어나 정상국가가 된 다음에는 남북간의 차이는 순전히 문화적 사회적 다양성으로 수용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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