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호주 대륙 사이에 위치한 섬나라 필리핀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1986년 2월 22일부터 25일 사흘간 ‘인민의 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를 에두르는 고속도로에 2백만 명이 넘는 필리핀 주민들이 운집해 반독재 민주주의를 요구한 비폭력 민중 혁명입니다.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이 물러나고 국민적 지지를 받는 아키노 대선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라는 시위였습니다.
1965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았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1969년 대선에서도 재차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필리핀은 대통령 임기가 4년이고 한 차례 더 중임이 가능했습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는 부정선거 의혹과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요. 그다음 대선인 1973년에는 더 이상 출마 자격이 없던 마르코스는 필리핀의 민다나오 등지의 사회적 불안정을 이유로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필리핀 주민들의 표현과 언론의 자유 등 시민권을 폐지 억압 통제하고 모든 권한을 틀어쥐었습니다.
또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 형식으로 헌법도 바꾸고 자신의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마르코스에 반대하는 정치적 경쟁자들과 비평가들을 체포하거나 유배 보내고 사형까지 단행하며 독재체제를 본격화했는데요. 마르코스의 주요 경쟁자이자 가장 유력한 야당 정치 지도자인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도 체포되었다가, 1980년 심장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3년이 지나 아키노는 귀국을 결정하지만 아키노는 마닐라 공항에 내린 직후 총격으로 사망합니다.
이 사건은 필리핀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독재정권에 맞서 온전한 시민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1985년 미국의 압력으로 마르코스는 대통령 선거를 그 다음 해에 진행하겠다고 갑자기 발표했습니다. 부정적인 방식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지 12년이 지나서 였는데요. 야당 측에서는 마르코스의 정치적 경쟁자란 이유로 저격당했던 아키노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를 대선 후보자로 내세웁니다.
1986년 2월 7일,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여전히 마르코스는 부정한 방식으로 자신이 승리했다고 결정합니다. 아키노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야당 측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맞서서 자신들의 승리를 주장했습니다. 종교계를 포함한 사회 각계각층의 부정선거 비판이 이어지며 국민들의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사태가 국민들의 승리로 기울기 시작하자 마르코스 정부의 내각과 국방부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사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마르코스는 2월 25일 미군 헬리콥터를 타고 한밤에 미국 하와이로 도주합니다. 미국 정부 문건에는 마르코스 가족이 미국으로 입국할 때 수백만 달러의 보석, 금, 주식,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필리핀 국민들의 선택과 힘으로 마르코스의 20년 독재가 끝이 났습니다. 마르코스가 떠난 뒤 독재자 가족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는지 전세계가 놀랐는데요. 세계적인 언론들은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가 수집한 호화로운 구두 3천 켤레가 전시된 방을 보도하며 마르코스 가족 중심의 부정부패를 비판했습니다.
20년의 독재 기간 마르코스 가족이 필리핀 재정에서 훔쳐낸 금액이 정확히 파악이 안 될 정도로 천문학적이라는데요. 약 50-100억 달러 정도를 빼돌린 것으로 추정한답니다. 부정부패와 인권 문제뿐 아니라 마르코스는 경제정책도 대대적으로 실패했는데요. 가족 중심의 경제 독점체제로 상당한 부정부패와 불공정이 20년간 이어졌고요. 1980년대초부터 점점 떨어지던 필리핀의 경제성장률은 84년과 85년에는 연이어 마이너스 7%를 기록합니다.
필리핀 ‘인민의 힘 혁명’이 일어난 한 해 뒤, 한국도 민주주의 혁명에 성공하고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마감하는 유사한 역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혁명 전 20여 년의 독재 시절을 보면 두 나라의 경제는 완전히 딴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통계자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60년 전 세계의 국내총생산 순위에서 필리핀이 20위, 한국이 35위입니다. 61년이 지난 2021년 국내총생산 순위는 한국이 10위, 필리핀이 34위인데요. 한 나라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선택이 그 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는지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국민이 어떤 지도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지도자가 어떤 가치와 생각을 가지고 어떤 정책을 선택하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천양지차로 달라졌습니다.
최근 김정은 총비서도 선택의 기로에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북한 경제정책에서 2016년 전후에 보여줬던 개혁적이고 발전적 경제정책의 색채가 점차로 위축되는 분위기가 최근 더 확대되는 것 같아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는데요. 필리핀과 한국의 역사적 전환을 보며 북한 김정은 총비서의 향후 정책적 선택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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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에디터:오중석, 웹팀: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