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북한은 왜 베트남이 될 수 없나

베트남의 한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
베트남의 한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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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일부터 양일간 김정은 총비서는 윁남(베트남)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응우옌 푸쫑 당시 베트남 대통령과 총리 등 국가 지도자들을 만나 양국의 외교적, 경제적 관계를 돈독히 하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양국의 공식 외교 관계는 60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오랜 친선관계만큼이나 양국이 긴밀히 협조해 동반 성장해 왔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큰데요.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바로 김정은 총비서가 베트남을 방문했던 이유에 있습니다. 60시간이나 기차로 달려서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했던 것은 2019년 2월 27일부터 이틀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서 북한 비핵화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지요. 당시 한국은 물론 전 세계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행보를 반신반의하면서도 북한이 비핵화 수순을 거쳐 국가 발전의 길로 들어설 것을 기대하며 하노이 회담에 주목했습니다.

일말의 기대를 했던 이유는 김정은 정권이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내세우며 경제정책에서 개혁적 시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기업책임 관리제’를 강조하며 시장 운영 원리를 일부 받아들여 기업소들이 실제 경영권을 갖고 생산, 판매하도록 허가하고 이윤도 기업소 각자가 분배하도록 융통성을 발휘했습니다. 산업 분야뿐 아니라 농업과 건설 분야에서도 활동의 자율성이 꽤 주어졌습니다.

이렇게 북한 당국이 주도적으로 경제에 활기를 주는 정책들을 취하고 있었고 여기에 더해 국제적인 협력을 가능케 할 기회가 엿보였던 것이지요. 따라서 국제사회는 북한이 비핵화 이후, 베트남이 이미 30여 년 전부터 걸어 온 경제 개혁의 길에 북한도 나서주길 기대했던 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됐습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아쉬운 베트남 방문에도 불구하고 노동신문에는 김정은의 베트남 방문 3주기를 기념하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기사는 베트남이 “공산당의 령도 밑에 인민들이 선택한 사회주의를 고수하며 전진시켜 나가고 있다”며 북한과 베트남이 비슷한 국가인 듯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베트남과 북한은 경제, 외교, 문화 등 많은 영역에서 확연히 다른 성격과 이념, 가치를 가진 나라입니다.

코로나 대유행병의 충격이 세계 경제를 강타한 첫해인 2020년, 웬만한 경제력을 갖춘 국가들이 국내총생산에서 마이너스 성장 또는 1%대 성장을 기록했고 세계 평균은 -3.6%였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2.9%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북한은 -4.5%였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세계적인 불황을 맞았음에도 적으나마 성장세를 보였던 것은 베트남 경제에 탄력성과 건전성이 어느 정도 뒷받침해 주고 있다는 반증인데요. 이 같은 베트남 경제의 성장은 1986년 베트남의 경제개혁인 도이모이 정책에 기인합니다. 베트남은 1990년대와 2020년 전까지 경제 성장률이 4.7%와 9.5% 사이를 유지했습니다. 30년이라는 장기간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입니다.

베트남이 성공적으로 도이모이를 실시할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의 요소가 있어 보이는데요. 하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는 베트남 지도부의 감각입니다. 두 번째로는 국가 지도부가 국민을 믿고 신뢰하는 ‘자신감’입니다.

1986년 당시 대통령이던 쯔엉찐은 북한의 혁명 1세대와 유사한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베트남의 국가주석이자 공산당 서기장이었는데요. 베트남의 극단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경제정책에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쯔엉친은 다른 혁명 1세대 지도부들과 함께 정계를 은퇴했습니다. 이후 도이모이를 위한 국가 운영 전권을 구엔반린에게 넘겼는데요. 구엔반린은 베트콩 출신 경제 개혁론자로 시장경제를 경험한 신진 정치인이었습니다. 베트남의 현실을 직시하고 혁명 1세대가 저질렀던 오류를 인정한 지도부의 용기가 경제개혁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베트남 지도부의 자신감인데요. 도이모이는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정치를 섞은 일종의 모험이었지만 지도부는 베트남 국민들의 유연한 적응력을 믿고 그 신뢰에 바탕을 둔 자신감으로 혁신적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지점에서 북한 당국과 비교가 되는데요. 북한은 2016년 전후로 시도하던 다양한 경제 개혁 정책으로 2012년부터 2016년 어간에는 주민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당 8차 대회에서 ‘경제사업에서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를 강화’한다는 경제 정책의 방향을 제시했지요. 이후 당의 결정 지시 집행을 철저히 하라는 중앙집권적 통제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더해 사상 교양 통제와 교육, 검토 등을 실시하며 국가적 통제를 더욱 옥죄는 분위기입니다. 국민들의 사상 수준을 신뢰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경제활동 잠재력을 인정하지 못하는 북한 당국은 개혁에도 자신감이 없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금 북한의 정책은 베트남 지도부가 국민을 믿고 자신감 있게 혁신적 발전의 길을 가던 것과는 정반대로 보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교육하고 이에 기반해 생활한 세월이 70년인데요.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70년간의 집중적 사상 교육을 믿고 국민들을 신뢰하며, 계획하던 경제개혁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