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은 ‘국제여성의 날’이었습니다. 북한은 이날을 ‘3.8 국제부녀절’이라고 부르며 기념합니다.
노동신문은 ‘국제부녀절’을 축하하는 사설을 내보냈는데요. 사설은 선대 지도자 김일성 주석이 ‘남녀평등권 법령’을 시행해서 수천 년간 지속되던 여성 권리에 대한 무지와 봉건적 불평등 그리고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던 여성을 해방시켜 줬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북한 여성을 ‘당과 혁명에 무한히 충실한 혁명가, 국가사업의 일익을 담당한 참된 애국자’로 키웠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 여성들이 혁명의 자주적 주체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된 것이 김일성 선대 주석의 보살핌 덕분이며 이에 따라 조선 여성은 김정은 총비서의 영도를 따라 애국 운동과 충성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사설은 ‘수령을 모셔야 녀성들의 자주적 존엄과 값 높은 삶, 진정한 행복이 있다’면서 여성들에게 ‘오직 총비서 동지만을 따르는 충성의 꽃이 되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가정의 주부로서, 며느리로서, 안해와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항상 자각하면서 시부모들을 잘 모시고 남편과 자식들이 국가와 사회 앞에 지닌 본분을 훌륭히 수행하도록 적극 떠밀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지도자를 따르는 행위에서 여성의 정체성이 있다며 꽃이 되어야 한다는 북한의 정치적 수사들을 국제사회의 여성 인권 운동가들이나 시민권 활동가들이 들으면 크게 충격받을 겁니다. 여성의 정체성으로 여성 자신의 가치, 업적이나 직위가 아니라, ‘아내, 며느리, 주부, 어머니'임을 강조하며 그 본분에 맞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북한에서, 여성을 독립적 개별 인간이 아니라 남성이나 정치 지도자에 종속된 부류로 묘사한 것은 너무나 가부장적이고 차별적인 생각인데요. 국제 여성의 날을 축하하면서 모순되게도 여성의 정체성을 이렇게 비하하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2023년 현재의 상식적인 여성관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표현이고 주장입니다.
북한에서 ‘세계여성의 날’을 ‘국제부녀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녀’라는 말은 물론 여성을 총칭하는 단어이긴 하지만 한자를 따지고 보면 ‘며느리’라는 의미입니다. 여성을 ‘부녀'라고 칭하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 혼자 사는 여성 또 어린 소녀들과 나이가 든 여성 등은 여성권에서 배제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구도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는 현대 인권 개념에 어긋나는 가치를 담은 표현입니다. 따라서 유엔에서도 ‘여성과 여아의 권리’라고 표현하면서 모두가 인권을 향유할 존재라는 포용적 가치를 담습니다.
국제여성의 날의 기원은 1909년 이후 미국의 사회주의당이 조직한 여성의 날 대회였습니다. 의류공장 여성 근로자들의 근로권 및 인권 보호를 위한 시위를 미국의 뉴욕시에서 진행하며 시작됐습니다. 그 다음 해에 국제 사회주의 여성 대회가 서유럽에서 열리고 여성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고요. 이렇게 시작한 20세기 초반의 여성 인권 운동은 여성들도 남성과 동등하게 한 표의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시민권 및 정치권에 대한 당연한 주장을 담고 있었습니다.
1967년경까지 사회주의 사상을 공부하고 확산하던 지식인, 청년들 사이에서 시민권을 위한 사회운동이 팽창하면서, 여성은 남성과 같이 독립적 존재의 인간이며 남성과 동등한 경제적 사회적 지위와 법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반화됐고요. 1977년부터는 유엔이 공식적으로 3월 8일을 여성의 권리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념일로 선포하고 매년 특정 인권 주제를 정해서 선전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성을 인간의 표준 또는 기준으로 여기며 여성과 아동을 남성의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가부장적 사고가 일반적이었는데요. 여성 인권 운동가들과 지성인들의 투쟁과 노력으로 전근대적 가부장적 사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즉 여성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존엄을 가진 존재라는 당연한 가치가 전 세계적 일반 상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민주화를 이룬 이후 1990년대를 지나면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확고히 자리하게 됐는데요. 따라서 여성은 남성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거나 남성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식의 전근대적 봉건시대의 생각과 가치는 1990년 이후 출생한 세대 청년들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북한도 2000년을 지나며 현대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할 수 있겠는데요. 이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수정하고 진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3.8 국제부녀절을 국제여성의 날로 명칭 변경하는 것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