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북한의 새로운 우물, 평양문화어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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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사람들이 가장 즐겨보는 영화 행사인 오스카 시상식이 12일에 열렸습니다. 지난 한 해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은 영화들을 뽑아 시상하는 행사인데요. 인터넷과 여러 텔레비전 통로로 실시간 중계도 하기 때문에 국적을 불문하고 영화나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 축제입니다.

올해로 95회째 진행된 유서 깊은 오스카 시상식은 미국의 영화 산업계가 주관합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던 미국 영화 산업 제작자들과 배우들이 주로 수상자로 꼽혔는데요. 하지만 올해 시상식 무대에는 많은 아시아인들이 상패를 받고 감격의 수상소감을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전까지는 오스카상 수상자의 대다수는 백인 미국인들이었고 영국, 프랑스 등지의 예술인들이 두어 차례 수상한 적 있었습니다. 아시아인 배우나 감독이 오스카뿐 아니라 국제적인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경우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홍콩, 대만과 한국에서 영화산업의 물결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중국 본토에서도 능력 있는 영화인들이 배출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동양인 영화감독들과 배우들이 수상하는 빈도가 점차 늘었습니다.

2020년에는 한국인 봉준호 감독, 21년엔 중국인 클로에 짜오 감독, 23년 올해도 중국 출신의 다니엘 콴 감독이 수상했습니다. 콴 감독이 만든 영화, “모든 것, 모든 곳에, 그리고 한꺼번에”라는 영화는 올해의 최고 작품상 외에도 감독상도 받았고요. 최고 주연 여자 배우상에 말레이시아 출신 여배우 양자경, 베트남 전쟁을 피해 난민으로 미국으로 피난간 키후이 쿠완이 조연 남자배우상을 받았습니다. 그 외 다 합쳐서 7개의 오스카상을 이 영화가 받았습니다. 여기에 출연한 94세의 원로 배우인 중국 출신의 제임스 홍 씨는 기자들에게 1960년대 미국 영화계는 아시아인들은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지금 이 무대 위를 보세요”라며 아시아인들이 오스카 상을 휩쓴 상황을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미국 영화계에 아시아 문화의 바람이 몰아칠 수 있었던 것은 문화, 예술, 등 많은 영역의 세계화 때문일 텐데요. 경제, 문화, 정치, 기술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던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에 한국 등 아시아의 문화가 스며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아시아 문화의 힘이 그만큼 장성했기 때문일 것이고요. 그뿐 아니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와 그 가치를 함께 즐기고 공유하는 세계화의 경향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든, 음악이든, 상품이든, 좋은 것을 한 나라 안에만 국한해 내부적으로만 향유한다면 그 가치는 그 나라의 크기로만 제한될 겁니다. 하지만 세계 사람들이 우리의 좋은 것들을 함께 즐기고 공유한다면 우리의 가치가 무한대로 확장되겠지요. 즉, 벽을 낮추고 함께 나누는 현재의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1980년대 이후 문화적, 경제적 잠재력을 내적으로 키우던 한국 등 아시아 국가가 국제사회로 뻗어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국 노래와 영화 그리고 오스카 영화제의 아시아 영화인들 수상이 그 결과입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문화정책은 이 같은 세계적 경향과는 반대로 북한 내부로만 향하고 있어서 걱정스럽습니다. 북한 당국은 외국 문화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북한의 청년들이 남한과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할 것을 걱정합니다.

그 결과,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고 국제사회와 공식적으로 문화의 담을 쌓았습니다. 거기다 올해 1월 중순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에서 ‘평양문화어보호법’까지 채택했는데요.

‘평양문화어보호법’은 선대 지도자들이 지켜온 평양문화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 나가는 것을 심각한 정치투쟁이자 계급투쟁이라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국가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외래어와 일본말, 한자말 등 규범에 맞지 않는 언어 요소를 규제하는 법입니다. 외래 요소가 다분한 말을 근본을 상실한 ‘잡탕 말이자 쓰레기 말’이라고 비판하며 사용금지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조선말의 70퍼센트는 한자어이고 그 중 대부분이 일본식 표현들입니다. ‘문화어’라는 말은 물론이고, ‘이신작칙,’ ‘위민헌신’, ‘자력갱생’, ‘현지료해’, ‘사회주의 사상’, ‘청년전위’, ‘주체’ 등 북한 당국이 즐겨 쓰는 이 모든 단어들이 다 한자말이고 순수 조선어가 아닙니다.

즉 무엇이 잡탕말인지, 무엇이 순수한 조선말인지 구분할 수 없는 말들을 우리가 매일 쓰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식으로 언어가 혼합되고 필요에 따라서 생성 또는 쇠퇴하며 변하는 것이 언어의 본성인데요. 법적으로 어떤 말은 되고 어떤 말은 안 된다고 제한을 두는 것은 국가적 에네르기를 정말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말 때문에 상식을 벗어난 강한 처벌을 한다면 유엔에서 금지하는 사상 표현의 자유 즉 기본적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 행위를 당국이 하게 되는 겁니다.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예술도, 애용하는 언어나 기술도, 앞서 설명한 것처럼 아시아의 취향이나 미국이나 유럽의 취향으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즐기는 세상인데요. 북한만 언어와 문화, 예술에서 세계와 높은 담을 쌓고 그 안에서 낙후되고 있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