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을 포함해 세계 많은 나라들이 북한 주민들이 힘들어하는 여러 형태의 인권 유린을 걱정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해마다 3월 중순이면 서유럽 중부에 위치한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인권이사회가 개최되고요. 여기서 세계 여러 국가의 인권 문제와 함께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도 대대적으로 토론합니다.
지난 20일 열린 제34회 유엔 인권이사회 본회의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가 한 시간 십여 분간 토론됐습니다. 서른 개 이상 나라의 외교관들과 십여 곳의 시민사회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걱정하며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의 외교관들은 자국 인권 문제 토론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북한과 친한 소수 나라들, 즉 라오스나 쿠바 외교관들의 입을 빌어 인권이사회와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의 발표 내용을 비판했습니다. 북한을 대변해서 우방국들이 토론한 내용은, 진실된 대화를 통해 인권 증진을 추구해야 한다거나 북한의 우선 정책과 국가적 특수성에 맞는 건설적 협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특별보고관의 권한은 비당파적,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들이었습니다.
‘건설적 대화를 하자'는 제안을 정작 당사국인 북한은 참석하지도 않은 채 다른 나라의 입을 통해서 주장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은 이번에 4번째로 임명된 것인데요, 세 분의 전임 특별보고관들 모두 북한 당국에게 우선적으로 요구했던 것이 직접 만나서 '건설적 대화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한 번도 화답하지 않았고요. 심지어 2014년 북한은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 인권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후, 지금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건설적 대화를 주장하면서 정작 대화 요청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공동대화의 장에도 등장하지 않는 말과 행동이 괴리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올해 인권이사회는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새로 임명된 엘리자베스 살몬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의 주도로 토론이 진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특별보고관은 매년 북한의 인권상황을 조사 연구해서 유엔 총회 등 유엔 기구에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즉 북한 인권 문제에서 대변인 격 역할을 유엔으로부터 부여받은 전문가입니다. 살몬 보고관은 첫 여성 특별보고관으로 본인의 임기 동안 북한 여성과 여성 아동의 인권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따라서 올해 인권이사회의 북한 인권 논의에서 이 주제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되었고,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북한 상황에 대한 보고서도 북한 여성들이 겪는 인권 문제들을 소상히 설명했습니다.
보고서는 먼저 북한의 정치범 관리소와 교화소에 구금된 여성들 대상 강제노동,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초래하는 가혹행위, 성폭행 등이 발생한다고 우려를 표했고요. 국경을 넘어간 여성들이 처하게 되는 인권 문제가 걱정된다며, 자칫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심각한 정치적 처벌을 받는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여성들의 성적 권리와 출산 관련 건강권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우려하는데요. 북한에선 건강에 해롭지 않은 현대적 피임 도구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위생 시설이나 환경도 열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한 보고도 있었는데요. 북한법으로 가정폭력과 강간 등이 금지됐지만 사실상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며, 여성 대상 폭력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심지어 처벌도 받지 않는 현상이 퍼져있다고 설명합니다.
여성 인권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보고된 것은 장마당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서인데요. 2014년부터는 북한당국이 시장 활동을 용인하고 개인사업을 허가하면서 여성들이 대거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긍정적으로 보고했습니다. 70% 이상의 세대에서 여성이 벌어온 수입으로 생계가 유지되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점도 높게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체계의 특성상 개인사업을 위한 투명하고 공정한 법 적용을 하지 못해서 뇌물과 여러 종류의 착취가 발견되는 점이 지적됐습니다.
보고서는 문제해결을 위해 북한당국에 주는 권고안도 포함했습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폭력과 성희롱을 피해 정도에 걸맞은 처벌을 하도록 형법을 잘 점검하라고 요구했고요. 효과적으로 성폭력 희생자를 보호하고 신고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할 것, 출산 및 여성 건강에 대한 포괄적인 성교육을 모든 시민들, 특히 사춘기 여성들에게 제공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장마당에서 부당한 착취를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하라는 권고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유엔 여러 회원국가들에는 평화, 안보, 인권에 대한 건설적 대화의 환경을 조성하라고 강조했습니다. 특별보고관은 그런 차원에서 국제적인 인도주의 협력을 강조했는데요. 중국 또한 북한 편을 들어 건설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로나도 거의 극복했기 때문에 국가 간의 왕래와 대화 통로가 대유행병 이전 시기처럼 회복됐습니다. 따라서 북한도 국제사회와 대화하지 못할 명목이 확고하진 않아 보입니다. 물론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이 여성 인권에 대해 이렇게나 큰 관심을 두는 이 시기가 북한당국에도 좋은 기회로 보이는데요. 북한의 여성과 여아의 건강과 인권을 증진할 인도주의적 협력에 대한 대화를 시작으로 오랜 단절의 물꼬를 트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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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