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3월 24일,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가 당시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에 공중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지중해의 발칸반도 지역, 즉 유럽 동남부 지역에 위치한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에선 이미 그보다 몇 년 전부터 남쪽에 위치한 코소보 자치주와 중앙정부 간 복잡한 민족 문제로 분쟁이 존재했습니다.
알바니아계 중심의 코소보 지역과 세르비아계가 주도하는 유고슬라비아 정부 간의 무력 충돌과 갈등으로 코소보 전쟁이 발발한 건데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대통령이 된 이후 알바니아계 사람들의 자치구인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해 버렸습니다. 이에 반대하는 코소보 자치구의 알바니아인들과 세르비아인이 주도하는 경찰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 아이들을 포함한 알바니아계 사람들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반인도적인 범죄도 발생하게 됐는데요.
알바니아인들을 학살하던 인종청소는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한 명의 외교관에 의해 중단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 행정부의 국무부 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입니다. 밀로셰비치가 이끄는 알바니아인 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해 나토 (NATO)가 코소보 전쟁에 개입해야 했지만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나토 개입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브라이트 미 국무부 장관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반인륜적 범죄를 가만히 지켜만 볼 순 없다. 밀로셰비치가 꾸미는 일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당시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의 대량학살을 막는데 개입하도록 결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여러 동맹국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나토가 군사적으로 개입해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를 중단시켰습니다. 3월 24일, 시작된 나토의 군사개입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 전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나토 개입 전 8천6백 명이 넘는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민간인들이 살해되고 8십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6월 11일까지 진행된 나토의 코소보 개입 전쟁은 이후 안타깝게도 5백여 명의 민간인 살상과 1천 명의 유고슬라비아 군인의 인명 피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극한의 참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전쟁은 올브라이트 국무부 장관의 용기와 결단으로 막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지금도 국제사회에서는 논란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발칸의 학살자’라는 별명이 붙은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와 전쟁범죄를 중단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후 국민들의 대대적인 반대로 밀로셰비치는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했으며 2001년 3월 말 부정부패, 권력남용, 횡령 혐의로 기소 체포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전쟁범죄로 국제 형사재판소에 기소됐습니다.
20년도 더 지난 얘기를 이렇게 꺼낸 이유는 지난 3월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84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올브라이트는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미국 국무부 장관에 역임한 인물이면서도 미국 장관으로서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외교관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 인권의 가치를 추구하는 올브라이트의 의지는 북미 양국 정부가 상호 적대적 의사를 가지지 않는다고 선언한 북미 공동 코뮈니케의 채택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남이 이뤄졌는데요.
세계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과 목소리는 사망하기 한 달 전까지도 세계 사람들에게 울림을 줬습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지난 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바로 전 날 뉴욕타임즈 신문에 논평을 썼습니다.
올브라이트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구소련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노력’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은 크나큰 역사적인 실수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극화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수 세기 전에 제국주의가 했던 것처럼 지금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지구를 쪼갤 권리는 없다”라며 푸틴의 침략을 저지하려 했습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평생을 보내며 지켜낸 세계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우크라이나는 물론 한반도 전역에도 퍼지기를 염원해 봅니다. 그리고 대의를 지키기 위해 개인의 정치적 손익 계산은 과감하게 버리고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높인 메들린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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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