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노동신문은 김정은 총비서의 말을 인용해,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 한 뜻으로 떨쳐 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창조하는 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당의 부름’에 따라 청진제강소 일꾼들과 노동자들이 16일의 공정이 필요한 작업을 이레 만에 완수했고, 또 20일의 노동이 필요한 작업도 한 주 안에 완료했다며 ‘노동계급의 힘찬 투쟁’을 칭찬했습니다.
한편, 28일 노동신문 6면에는 자본주의 사회를 맹비난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 간의 평화공존, 타협과 협조가 있을 수 없으므로 사회발전과 공동 번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사회발전과 공동 번영을 누리고 있는 대부분 나라들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 시장경제 체제로 경제를 운영하는 나라들이기에, 노동신문의 이 주장은 명백히 틀렸습니다. 또 이 나라들은 경제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의 보호가 필요한 노인, 장애인, 고아, 외부모 가정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복지 체계를 대체로 잘 갖추고 있습니다.
실례로 비교적 안정적이고 선진적 경제를 운영하는 38개 국가로 구성된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국내총생산의 21.1%를 사회복지 정책에 소비합니다. 2022년 기준으로 많게는 프랑스가 31% 이상, 한국이 14.9%, 미국이 22.7%, 독일은 26.7%를 취약계층을 위해 국가 예산을 씁니다. 이것이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국가적 노력인데요. 사회복지 정책이 바로 노동신문이 말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평화공존을 위한 타협과 협조의 결과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법적, 사회적 장치들도 잘 마련되어 있어 노동자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정부와 국가 지도부와 타협점을 찾아가는 관행도 현대 사회에서는 예삿일입니다.
2월 중순, 인도 남단의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10만여 명의 보건 의료인력의 파업이 있었는데요. 스리랑카 대통령이 필수 공공 편의 봉사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파업이나 노동 거부 등의 노동쟁의 활동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법안을 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반발해 모든 부문의 의료인들이 거리로 나왔고 적절한 임금 체계와 안전한 근로 환경과 조건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는데요. 정부는 수십 개 병원에 천여 명의 군인을 배치해 통제했습니다. 이틀간 진행된 총파업은 우여곡절 끝에 스리랑카 정부가 보건노동조합과 타협점을 찾기 위해 대화를 제안했고,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노동쟁의는 중단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노동자 간에 앞으로 장기적인 해결점을 찾아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아프리카의 중동부에 위치한 나이지리아에서도 2월 하순에 노동자 파업이 있었습니다. 나이지리아 노동자 총연맹은 경제적 어려움과 생활비 인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며 시위에 나섰고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정부의 가시적인 조치와 정책이 나올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노동자 총연맹의 우려를 받아들여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화와 의사소통을 약속했습니다.
지난 27일에는 튀르키예(터키)에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던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한 달 치 로임이 지불되지 않아서 작업을 중단하고 시위에 나섰습니다. 노동자들은 임금 지급과 함께, 적합한 노동 조건과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로임을 받을 때까지 파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28일에는 한국의 서울에서 시내버스 노동조합의 총파업이 있었고 11시간 만에 사용자 측과 임금협상에 합의했습니다. 이날 새벽 4시부터 버스 노조의 총파업으로 서울의 시내버스 90% 이상이 운행 중단돼 시민들의 출근길 불편을 초래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와 회사 측의 장시간 협상으로 4.48%의 노동자 임금 인상과 명절 수당을 482달러에 맞추기로 합의하고 파업을 중단했습니다.
이것이 노동자들이 처한 부당함, 불편함을 해결하는 일반적이고 국제적인 방식이자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입니다. 유엔의 국제노동기구 등 다양한 국제협약에서 공히 강조하는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에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 그리고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는 원칙이 포함돼 있고 북한 당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이 같은 권리를 보장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 노동자들의 처우는 어떤가요? 제대군인들을 로임도 못 받는 돌격대에 무리배치해서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하는 관행이 일반적이고요. 목표 초과 달성이라는 당의 지시가 내려오면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정상적인 작업 속도도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결과를 내오기 위해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요. 그러면서도 쌀 몇 킬로 못 하는 로임을 받는 것이 보통 북한 노동자들의 형편입니다. 하지만 노동자 권리를 대변하는 장치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노동자의 권리가 전적으로 무시되지만, 북한 당국은 노동자의 부당한 강제 노동에 근거해 ‘사회주의 건설'을 강조하고 있고요. 지방의 노동자, 농민과 평양의 지도부, 구세대 혁명가 계층 간의 사회적 기회와 생활상이 천양지차로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천국인 듯 자랑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인민의 복리증진’을 위한다면, 노동자들의 건강에 해로운 비정상적인 업무과중과 정신적 압박을 초래하는 ‘증산 투쟁’이네, ‘전례 없는 실적 기록’이네, ‘로동계급의 힘찬 투쟁’ 등의 정치 구호는 자제하길 권유합니다. 이건 노동자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부로서 최소한으로 가져야 하는 양심이 아니겠습니까?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