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두 유명인사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한 명은 독재자와 학살자로 악명이 높은 사람이고 다른 한명은 인권과 사랑을 몸으로 실현해 세계시민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과테말라의 독재자 에프레인 리오스 몬트 (Efrain Rios Montt)와 미국의 시민 인권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입니다.
지난 1일 아메리카 대륙의 허리에 위치한 과테말라의 전 대통령 에프레인 리오스 몬트가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리오스 몬트는 내전 중이던 과테말라에서 1982년 3월에 쿠데타를 일으켜 지도자 자리에 앉습니다. 리오스 몬트가 이끄는 군사정권은 “네가 우리와 같은 편이면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일 것이다”라고 공포하고 민간인들을 살상하기 시작합니다. 희생자가 된 사람들은 주로 고원지대에 살던 마야 원주민들입니다. 원주민들이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게릴라에 가담할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었습니다. 유엔 보고서는 희생자의 83%가 먀야 원주민이라고 밝혔습니다. 군사당국은 마야 원주민들을 제거할 ‘초토화 작전’을 벌였습니다. 백여 명의 군인들이 중무장을 하고 원주민 마을로 들어와 260명 이상의 원주민을 단 하루만에 학살하는 사건도 있을 정도로 무자비한 살상을 자행했습니다. 리오스 몬트는 이듬해 또 다른 쿠데타로 지도자 자리를 떠나야 했지만, 과테말라에서 진행된 정부군과 무장게릴라 세력간의 36년의 내전 동안 리오스 몬트가 집권한 1982년과 1983년에 가장 심각하게 민간인이 학살됐다고 합니다.
리오스 몬트는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뒤 과테말라 의회에 의원으로 활동했기에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집권기간 동안 자행한 학살 등 잔혹범죄에 대한 책임규명과 처벌에서 자유로웠습니다. 허나 2012년에 면책특권이 소멸돼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1771명 살해, 2만 9천명 강제이동, 여성 8명에 대한 성적 학대와 고문 등 범죄의 교사자로 기소됐습니다. 최초 재판에서 리오스 몬트에게 대량학살과 반인도범죄를 자행한 책임자로 유죄판결을 내리고 대량학살에 대한 처벌로 50년 반인도범죄에 대해서 30년, 총 80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재판이 취소되고 다시 소집되는 등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2016년에 최종 유죄판결을 내렸으나 고령인 점을 감안하여 가택연금으로 결정났습니다. 결국 학살과 반인도범죄의 가해자이자 독재자 리오스 몬트는 가택연금 중 91세에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세계의 언론은 독재자가 감옥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에 대해 설왕설래하기도 합니다.
반면 독재자와 정반대의 삶을 산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8년 4월 4일에 극단적 보수 백인 단체 회원에게 암살됐습니다. 38세의 젊은 흑인 인권운동가가 사망한 겁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은 투표권도 행사할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킹 목사는 백인과 흑인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비폭력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여받을 정도로 흑인의 시민권 증진과 인권을 위한 공로는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지만 매년 4월 초가 되면 세계언론들은 빠짐 없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공적을 기리며 그의 인간존중 정신을 되새깁니다. 킹 목사가 숨을 거둔지 올해로 50년이 됐습니다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의 연설을 들으며 인류평등의 가치와 인간 사랑의 정신을 따라배우려 합니다. 킹 목사는 인권의 가치와 시민 운동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공교롭게도 4월 초에 운명을 달리한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의 인생을 돌아봤습니다. 대조적인 두 명의 삶을 통해 우리는 인류가 고귀하게 생각하는 인권과 인간존엄의 가치를 실현하고 계승하느냐 아니면 그 가치를 무시하는가에 따라 행위의 주체인 개인의 가치도 존경받는지 그렇지 않는지 가름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