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누가 공화국을 모략하나

스위스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 모습.
스위스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 모습. (/REUTERS)

0:00 / 0:00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난 4일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인권이사회는 2003년부터 매년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인권이사회 47개 회원국들이 투표 없이 합의 방식으로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결의안에 반대하는 나라가 인권이사회 회원 국가들 중에 십여 개라도 있다면 투표를 진행했을텐데 그런 주장을 한 국가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무투표 합의로 결의안이 채택된 후, 북한은 제네바 유엔사무국 주재 한대성 상임대표의 이름으로 담화를 내놓았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도 올라간 이 담화는 북한인권결의안을 ‘미국과 추종세력들이 일방적으로 조작해 낸 협잡 문서’라고 주장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정보권 침해’, ‘자의적 구금과 처벌,’ ‘사회적 차별,’ ‘납치’ 그리고 ‘사생활 감시’ 등 결의안에서 지적한 인권 문제들을 열거하면서 이 같은 인권 문제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허위와 날조’라고 강변했습니다. 또 결의안은 ‘내정 간섭이며 주권 침해행위’라면서 ‘주권과 존엄’을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2021년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청년교양보장법을 채택했습니다. 이 법은 청년들의 사상과 말은 물론 내부에만 접속이 허용되는 북한의 인터넷망도 통제합니다. 심지어 북한에서 출판된 사회주의 사상 논문이나 서적도 마음대로 볼 수 없게 했는데요. 이는 분명 청년들의 정보권을 침해하고 사생활을 감시하는 인권 유린에 해당합니다. 이 사례만 봐도 북한인권 결의안이 아니라 한대성 대사가 대변한 북한의 주장이 오히려 ‘허위와 날조’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이렇게 북한당국이 끔찍이도 싫어하고 배격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은 매년 3월에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그리고 12월에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됩니다.

올해만이 아니라 유엔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북한의 인권 상황을 우려하는 결의안이 일년에 두 차례씩 채택돼왔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은 투표없이 전원합의로만 채택됐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북한 당국의 반응은 이번 한대성 대사 담화 내용과 거의 같았습니다. ‘반공화국 모략’이다, ‘거짓 선동에 기초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체제전복 기도’라는 주장이지요.

특히 북한은 이번 결의안을 채택한 주체가 ‘미국과 미국을 추종하는 한 줌도 안 되는 세력’이라고 폄하했는데요. 북한인권 결의안에 반대하는 측이 오히려 한 줌도 안 된다는 사실을 담화를 쓴 한대성 대사가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을 무투표 전원 합의로 채택해 온 것은 2012년 12월 유엔 총회부터입니다. 한 줌도 안 되는 국가들이 유엔 총회와 인권이사회에 북한인권결의안을 발의했다면, 대다수의 반대국들이 투표를 요구하고 나섰겠지요.

이렇게 20년 이상 채택되는 결의안에 대해 북한 당국의 대응은 한결같이 적대세력들의 모략이라 하니 오히려 이런 주장이 더 이상합니다.

차라리 김정은 정권 들어서 달라지고 있는 북한의 모습들과 정책들이 있다면 국제 사회에서 그 부분을 주장하는 식으로 외교전략을 바꿔볼 것을 제안합니다. 최근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가 채택하는 법들은 효과적으로 실현만 잘 하면 인권문제의 개선도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는 대안들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2021년 11월 채택한 구타행위방지법의 경우, 사회 모든 곳에서 구타 등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법인데요. 구타 행위에 대한 법적 정의도 내리고 어떻게 구타 행위를 제지하고 신고할지, 교양과 처벌은 어떤 식으로 할지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제대로 집행만 된다면 아동과 여성인권 그리고 구금시설 내 인권문제 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022년에 채택한 육아법이나 2021년의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에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보살필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적극 알리며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것이 더 외교적, 전략적으로 도움 되지 않을까요?

물론 기존의 북한법도 법 논리와 내용만 보자면 인권을 보호하는 측면이 다분히 있습니다. 관건은 법에 따른 집행과 법 적용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환경과 체계 그리고 당국자와 주민들의 성숙한 법의식이 있는가 입니다. 이런 점들을 따지고 본다면 여전히 개선해 나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진정성을 가지고 유엔의 인권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유엔 무대에서 북한의 편을 들어줄 나라들이 조금은 더 생기지는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지난 70년간 정치범 관리소를 운영하며 주민들의 생명과 정신, 눈과 귀를 통제하는 반인도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심각성을 놓고 볼 때,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인데요.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한 책임규명 문제야 지금 당장 답을 내놓올 수 없다 하더라도, 적극적 인권외교 전략으로 국제 인권 논의에 나오는 게 북한에도 도움될 것으로 보입니다. 상식도 안 통하는 불량국가라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영원히 갖고 살 필요는 없으니까요.

‘한 줌도 안 되는’, ‘적대세력의 공화국 모략’이라는 똑같은 화풀이용 담화만 20년 이상 되풀이 한다는 것은, 북한 외무성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