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정확히 30년 전,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르완다라는 나라에서 80만여 명의 민간인을 살해하는 인종청소 즉 ‘제노사이드’가 자행되었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았던 ‘후투’ 민족이 소수 민족인 ‘투치’ 민족을 4월 7일부터 100일간 무자비하게 살상한 사건입니다. 이 끔찍한 반인륜적 잔혹범죄를 르완다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후투 민족과 투치 민족 간의 갈등은 이미 한 세기 전 식민지 시절부터 존재했습니다. 식민지 시대가 끝이 나고 르완다가 독립하던 1962년부터 두 민족 간의 갈등이 대두되기 시작했는데요. 후투 민족이 권력을 잡으면서 투치 사람들을 대상으로 차별과 폭력을 행사했고 두 민족 간 갈등과 긴장이 높아졌습니다. 그게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는데, 후투 민족 출신의 당시 르완다 대통령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투치 민족의 계획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그 바로 다음 날인 1994년 4월 7일부터 투치 민족 대상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집권 세력인 후투 민족의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계획된 인종 말살 전략이었습니다. 이후 혼란을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했던 투치 민족의 ‘르완다 애국전선’의 군사작전으로 르완다의 통제권을 투치가 장악하면서 100여 일간 진행된 인종청소의 잔혹 살상은 끝날 수 있었는데요.
그 후 뒤따르는 과제는 제노사이드를 자행한 사람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1994년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결정하고 ‘제노사이드’의 책임자를 규명하고 처벌했습니다. 대량 학살을 조직한 고위 관리와 인물들 93명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했고, 당시 총리를 포함해 61명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국제 형사재판소가 고위 지도부급의 책임자를 기소하고 재판했다면, 르완다 국내의 사법 제도는 동원 책임규명에 기여했습니다. ‘가카카 법원’이라고 불리는 르완다 전통적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사법제도를 활용해 대량 학살자를 법정에 앉힌 것입니다. ‘가카카 법원’은 수 천 건에 달하는 대량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의 처벌, 갈등 조정, 처벌 단계 이후의 국가 통합과 화해 등을 위해 큰 역할을 했습니다. 30년 전 르완다에서 자행된 끔찍한 인종 말살 범죄는 2015년 말이 되어서 공식적으로 매듭을 지었습니다.
청취자분들에게는 생소한 르완다의 투치 민족 대학살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설명드린 이유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공권력을 가진 지도부가 저지르는 잔혹 인권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규명하는 방안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비극적이지만 권력을 가진 정부나 당국이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고 계획적인 인권유린을 가했던 사례들은 인류 역사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는 그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 규명과 처벌이 이어졌는데요.
지금부터 10년 전에는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중대 인권유린의 일부분이 ‘반인도 범죄’에 해당한다는 중요한 유엔 문건이 나왔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결정으로 조직된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보고서였습니다. 보고서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고 끔찍한 인권유린을 북한 당국이 자행하고 있다. 조사위원회가 발견한 많은 인권유린들은 반인도 범죄에 해당된다”라고 밝혔습니다. ‘반인도 범죄’는 투치 민족이 희생되었던 ‘제노사이드’와 ‘전쟁범죄’와 함께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책임을 규명할 반인륜적 잔혹 범죄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 따라서 조사위원회는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의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기해서 재판소의 관할권에 따라서 책임을 규명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즉 앞서 설명한 르완다의 경우처럼 국제 형사재판소를 따로 설립해서 잔혹 범죄의 진상규명과 가해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권고였습니다.
르완다는 학살의 규모도 광범위했지만 국제재판소의 일 처리 속도도 느렸기에, 르완다는 ‘가카카 법원’을 열어 자국법으로도 책임 규명의 절차를 거쳤는데요. 북한은 국제형사재판소의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재판 관할권이 북한 영토에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반인도 범죄를 책임 규명할 ICC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도 불가능하고요. 심각하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정권이 자행하는 인권유린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법이나 제도도 북한에는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북한 법에도 인권유린을 금지하는 법은 있습니다.
2021년에 채택한 ‘구타행위방지법’이 있어서 북한 주민들은 타인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이 법에 따라 피해자는 손해 배상도 받을 수 있고요. 가해자는 벌금형과 노동교양 처벌도 받습니다. 그리고 ‘인민보안단속법’도 있어서 보안원들이 인권유린을 하거나 직권을 남용해서 주민들의 인권에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합니다. 물론 법 내용과 현실적인 법 집행에는 많은 괴리가 있어서, 보안원들의 업무 진행에서 일반 주민들 대상 폭력과 폭행, 모욕적 처우들이 여전히 많이 보고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그건 보안원들의 직권남용이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법률에 근거해, 북한 주민들이 보안원의 과도한 폭행이나 인권유린과 강압에 대처해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정당하게 자신의 인권을 방어할 법적 근거가 있다는 말이지요.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권고한 반인도 범죄에 대한 책임규명은 어쩌면 좀 먼 미래에 달성될 듯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북한 주민들은 보안원이나 보위원 또는 공권력을 가진 일꾼들에게 인권유린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을 드려봤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천부적인 존엄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의 국내 법으로 주민들의 인권 보호를 보장한다고 규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