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 자본가의 손녀, 종교인이나 해외도주자의 자식들, 장애인 또는 일반 농장원 자녀들이 북한에서 중앙당 간부가 되는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까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지난 4월 7일 미국 상원에서 신임 대법원 판사로 확정된 인물이 크탄지 브라운 잭슨 (Ketanji Brown Jackson)이기 때문입니다. 잭슨 씨는 여성이면서 아프리카 계 흑인입니다. 잭슨 판사의 임명은 1789년에 설립된 미국 대법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획기적인 간부 사업으로 기록됩니다. 1789년부터 종신직 대법원 판사 115명 중 108명이 백인 남성이었는데요. 백인 남성 주도의 대법원에 흑인 여성 판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보수적 미국 연방 사법계의 큰 진보적 발걸음입니다. 흑인 및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항하는 진보적 투쟁은 미국 역사와 함께 해왔는데요. 200년 이상 지속된 차별 철폐와 평등한 시민권을 위한 투쟁이 흑인 여성 판사 잭슨의 임명이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미국 사회의 인종 간 차별 의식과 관행이 북한 사회에 광범위하고도 뿌리 깊게 퍼져 있는 다양한 종류의 차별과 꼭 맞는 비교 대상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여러 북한 인권 문제 중에서 국가발전에 장기적으로 심각한 장애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 ‘차별’로 보이는데요. 단편적인 예로 인민예술 축전이나 광장 무도회 사진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화려한 색상의 한복을 입고 등장합니다. 반면, 수 천 명이 모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 정 기관의 정치 행사나 회의 사진에는 여성 간부는 다섯 명도 채 안 보입니다. 이것으로 북한에서 여성의 지위나 역할이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차별은 취약계층과 약자에 대한 태도나 제도와 관행에도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지난달 말 일본 언론매체 아시아 프레스는 청년들이 삼지연에서 대거 탈출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2016년부터 세계적 수준의 관광도시이자 산간 문화도시를 건설한다는 목적으로 삼지연에 대단위 살림집을 건설했지요. 그리고 여기에 살 주민으로, 고급중학교 졸업반 또는 대학 졸업 청년들을 ‘탄원’하게 하여 집단 진출시켰습니다. 하지만 국경이 봉쇄되고 일거리도, 배급도 없이 청년들이 살아갈 방법이 없어 갖가지 명목으로 이 도시를 벗어나려 한다는 보도였습니다.
삼지연은 백두산 아래 산간오지라서 김정일 시대부터 무리 배치 대상 지역이었습니다. 부모가 돈과 권력이 없는 제대군인들을 수천 여 명 단위로 여러 차례 배치해 감자 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10년 이상의 군 복무를 마치고 드디어 사회 복귀를 꿈꾸던 군인들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지도 못하고 산간오지로 배치받을 때의 심경, 얼마나 암울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진취적이고 혁신적으로 인생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요?
‘탄원’하는 방식으로 개인적 취향이나 능력을 무시하고 청년들을 무리 배치하거나 집단 진출시키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권리의 위반 즉 인권유린입니다. 특히 부모가 인맥도, 권력도, 돈도 없어서 좋은 직장이나 대학으로 빼낼 수 없는 청소년들, 또는 돌봐줄 부모나 친지가 없는 고아들이 오지로 탄원해야 하므로 심각한 차별입니다. 여기에 더해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한번 산간오지에 자리 잡게 되면 웬만해선 그 지역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차별은 인권유린이자, 동시에 많은 청년들을 사회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해 국가적 손실도 만듭니다.
그런 맥락에서 차별이 없어진다면 많은 장점들을 예상할 수 있을 건데요. 먼저 특별한 조건을 내걸어서 주민들을 등급으로 나누지 않기 때문에 더 능력 있고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의 폭이 크게 증가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강력한 자산이 된다는 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신체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보통 사람들보다 약한 사람들을 존중하게 되니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인간애를 사회 전체가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됩니다. 이는 국제사회가 우려해 온 북한의 인권 문제 해결의 초석이 될 겁니다. 셋째로 개인의 잘못이 아닌 조건들로 특정 사람들을 혐오하고 따돌리는 행위가 사라지게 되니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 사회적 불만분자들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건전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차별을 없애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주민 대상 강연도 필요하겠지만, 공무원을 등용하는데 채용 시험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능직 공무원부터 시험을 쳐서 합격자들을 뽑는다면 똑똑하고 혁신적인 생각을 하는 농장원의 딸도, 할아버지가 지주였지만 인품 좋고 능력이 특출난 대학 졸업반 청년도, 중등학원에서 자라난 천재적인 소녀도 미래의 간부로 육성할 수 있습니다. 차별 없이 인재를 등용하는 모습을 인민들에게 보여줄 때라야 청년들이 용기를 가지고 국가 발전에 뛰어들지 않을까요?
권은경, 에디터:오중석, 웹팀: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