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8년 전 한반도 남쪽에서는 자유와 민주, 정의를 전국민이 한 목소리로 외치던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4.19혁명’입니다.
남한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이끌던 자유당 정권은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무리한 개헌과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치렀습니다. 1960년 3월 15일 대선을 위해 내무부가 경찰과 공무원들을 조직해 자유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전국적인 강연회를 진행하고 국민들을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또 자유당을 찍은 가짜 투표용지도 무더기로 투표함에 넣었습니다.
부정선거와 개표조작을 통해 대통령에 이승만과 부통령 이기붕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습니다. 국민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아니란 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투표 당일부터 각종 부정선거 행태가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산의 중고등학생들이 이에 항거하는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시위에 참가했던 마산상업공등학교의 김주열 학생이 실종됐습니다. 4월 11일에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부두에서 발견됩니다. 이 사건이 폭로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습니다.
4월 18일 서울의 고려대학교 학생 3천여 명이 시위를 했고, 해산 후 학생들은 정부가 조직한 정치깡패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합니다. 이 과정에 학생 한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것이 도화선이 돼 4월 19일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대대적으로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열었고 전국적으로 대도시에서도 시위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승만의 4차례 대선 도전을 위한 부정선거에 맞서는 항거와 독재정권을 개혁하려는 전국민의 의지는 마침내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서 제출로 마감하게 됩니다.
4.19혁명은 제 2공화국의 출범으로 이어졌습니다만 불행히도 바로 다음해 박정희가 주도한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혁명의 꿈은 좌절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58년 전 4월 한반도의 남쪽 땅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던 역사입니다.
당시 청년 학생들의 결연한 의지와 희생, 정의를 향한 함성은 대한민국 역사의 방향을 진보와 민주주의, 경제발전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로써 남한국민들의 의식 속에 자유, 민주, 정의의 가치와 정신 즉 4월 혁명의 정신을 깃들게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도 모범이 되는 진보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로 만든 단초입니다. 하지만 이 자랑은 한반도의 남쪽에만 해당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남한의 4.19혁명이 일어나던 그 시기 한반도 북쪽은 김일성 중심의 일인 독재체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로 인해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발견한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며 끔찍한 인권유린’ 그리고 ‘반인도범죄’가 자행되지만 가해자는 책임규명과 처벌에서 자유로운 현재의 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동시에 주민들의 의식에는 인권이나 민주적 시민의식, 법치, 정의 등에 대한 의식이 자리잡지 못하는 현실로 이어졌습니다.
이달 말이면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될 계획이고 6월 초에 북미간 정상회담도 있습니다. 6월이 지나면 우리가 기대하는 비핵화와 평화정착이 실현되는 한반도를 꿈꿀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 다음은 북한의 국가정상화와 인권 실현을 통해 자유와 민주, 정의의 정신이 북한 땅에도 뿌려지기를 희망합니다. 1961년 좌절됐던 4월의 꿈은 북한에서 이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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