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북한이 4년 동안, 40개 새 법을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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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은 한국의 ‘법의 날’입니다. 1894년 갑오개혁 시기, 최초의 근대적 법인 ‘재판소구성법’이 지정됐고 1895년 4월 25일에 이 법이 시행되는데요, 이것을 기념해 지정한 것입니다. 한반도 전역에 효력을 발휘한 근대적 법의 시행을 기념한다는 차원에서 ‘법의 날’의 의미가 더 뜻깊게 느껴집니다.

북한은 2019년 이후 다수의 새로운 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4개 법, 2020년에는 11개, 2021년은 무려 24개 법이 새롭게 채택됐는데요, 올해 1월에도 새로운 법이 채택돼 4년 사이에 무려 40개의 새로운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정도면 한 나라에 새 정부를 혁명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과 맞먹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데요. 북한 당국의 속사정을 명확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만, 법 제정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던 시기가 2019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배경을 유추할 수 있을 듯합니다.

2019년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간 정상회담이 실패로 돌아간 시기입니다. 이후 북한 당국은 국가를 어느 방향으로 운영할지 결정한 듯 보이고 이러한 새로운 법은 그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물론 최근 새로이 채택한 40개가 넘는 법 중에는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법들도 있습니다. 2020년에 채택한 ‘원격교육법’은 고등교육에 국한한 법이란 것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사회 모든 성원들이 일하면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세외부담방지법’도 2020년에 새로 채택됐는데요. 북한에서 돈 좀 번다고 하는 사람들은 각종 세외부담 때문에 골치가 아프잖아요. 다양한 지원사업과 꾸리기 사업을 위해 돈과 물자를 내야 하는 것은 북한의 오래된 관행입니다. 따라서 세외부담은 주민들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을 책임지는 가두여성들(주부)의 정신건강까지 해치는 요인이 되는데요. 사회적 악영향의 요인인 세외부담을 방지한다니 다행입니다.

그 대신 더 강도 높은 노력 동원이 이뤄지지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법을 채택한 것은 장기적으로 주민 생활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도 허풍방지법이나 구타행위방지법 등도 채택됐는데요. 이러한 법은 주민들의 경제생활에 효율성을 높이고 개개인의 인격을 상호 존중하는 일상적 풍토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동시에 문제가 다분히 보이는 법들도 많은데요. 대응조치법, 군중신고법, 청년교양보장법,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을 보면 앞으로 북한 주민들이 세계에서 얼마나 외톨이가 될지 염려스럽습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그해 11월에 채택한 ‘대응조치법’은 북한 주민들과 세계를 전격적으로 격리하려는 북한 당국의 명확한 의도를 보여줍니다.

외국의 ‘비우호적 행위’에 대응해서 ‘공화국의 주권과 이익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이라고 밝히면서 경제, 문화, 교육, 과학, 보건, 체육 분야에서 인민들과 기관 기업소의 이권을 침해하거나 방해할 것으로 여기는 7가지 행위들을 명시했습니다. ‘비우호적인 행위를 조직 또는 추동한다’고 간주하는 외국 사람이나 단체의 활동을 북한 당국이 외교적으로 차단하고 적대시하겠다고 공포한 법입니다. 또 이후에 외국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채택한 모든 법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법이기도 합니다.

‘군중신고법’도 걱정됩니다. 이 법은 ‘전인민적인 군중신고체계를 확립’해서 ‘반사회주의적 현상과의 투쟁’을 전면적으로 벌여나갈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주민들의 생활 곳곳에서 신고 체계를 세우라고 법으로 정했는데요. 다른 나라사람들과 접촉, 한국 방송을 시청하는 행위, 다른 나라 책을 들여오거나 보는 행위, 많은 돈을 쓰는 행위 등을 신고하라는 법입니다.

한국이나 보통 나라들에서는 강도, 살인 등 심각한 범죄나 교통사고, 인명피해 같은 것을 경찰에 신고하는 게 일반적인데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사소한 이웃의 일상을 상호 감시하고 신고할 체계를 세웠습니다. 이는 사생활을 보호받을 인간의 기본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주민 생활의 활력을 죽이고 사회의 발전적 에네르기를 차단하는 법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 청년교양보장법, 반동사상문화교양법, 평양문화어보호법으로 극형을 명시하는 등 엄중한 형사법적 처벌까지 단행하며 한국과 기타 세계의 영향을 막고 있습니다.

세계 대다수 사람은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지식과 정보, 문화 자료는 물론 기록물들을 서로 나누고 함께 즐기며 배우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70여 년을 북한 주민들만 세계의 정보와 지식의 바다에서 외따로 떨어져 차단돼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이 국제적 고립 현상을 법으로 더욱 공고화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오직 정권과 체제 안보만을 위해 전체 북한 주민들을 국제적 문맹으로 만드는 데 법을 활용하고 있는데요, 이는 분명 '정의의 실현'을 법의 가치 중 하나로 여기는 세계적 법 상식에는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