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막을 내린 북한의 ‘2023년 봄철녀성옷전시회’에 대해서 한국 언론과 북한 전문가들이 재미있는 의견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행사에 전시된 상품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어서 저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봄철녀성옷전시회’에 나온 여성 옷과 손가방의 모양과 특색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명품 상품들의 고유한 문양과 도안을 본뜬 것 같다는 지적들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영국 또는 이탈리아 등지의 고가 의류 회사인 루이비통이나 샤넬 제품 고유의 문양과 상표 도안이 북한 경공업성 산하 공장들이 제작한 북한 여성 의류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경공업 부문 공장들이 외국 유명 상품들을 도용해서 일종의 짝퉁 제품들을 만들었고, 이는 상품권이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라는 비판입니다. 상품의 도안이나 특유의 색채, 장식 등을 그 회사의 허락 없이, 또는 구매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소유권을 가진 외국의 회사가 손해배상을 위한 소송을 걸어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복 제조 회사가 영국의 ‘버버리’라는 유명 의류 회사의 고유한 격자 무늬와 색감을 그대로 사용해서 문제가 발생한 적 있었는데요. 양측은 협상 끝에 한국의 교복 회사가 다른 색깔의 격자 무늬로 상품을 교체하기로 합의하고 소송을 매듭지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와 유사한 경우들이 언젠가는 북한 의류산업이나 문화 등 다양한 부문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이런 사정은 무시한 채, 북한당국은 은하무역국, 평양시피복공업관리국, 경흥무역국 등에서 선보인 색색 가지 의상들을 ‘우리의 문화, 우리 식의 멋과 향기’가 차 넘친다고 자랑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 말도 완전히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겠는데요. 왜냐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에서 ‘우리 문화, 우리 식의 멋’이란 것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것을 놓고도 ‘우리 식, 우리 멋'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 식'을 억지로 정해두고,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처벌하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지요.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에서 소개한 여성 옷 전시회 사진을 보면, 비슷한 모양의 옷을 한국의 서울에서 입고 다녀도 크게 어색해 보이지 않을 듯 보입니다. 북중 국경지역에서 찍힌 북한 장마당의 영상과 북한 언론이 내보내는 평양시민들의 모습들을 봐도, 북한 여성들이 즐겨 입는 옷 모양새가 이제는 남한이나 중국, 저 멀리 윁남(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입는 의상들과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장마당에서 오다니는 젊은 북한 여성들의 옷차림과 매무새가 너무나 예쁘고 멋져 보이는 경우들도 적잖습니다.
현재 인류의 의류나 우리가 즐겨 쓰는 다양한 상품의 도안들이 대체적으로 편리함을 추구하며 변화해 왔기에 어느 정도는 통일된 모양새를 띠고 있지요. 전화기나 전등, 책상 등의 물품들이 대체적으로 전형적인 모양이 잡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물론 현대 의상들의 뿌리는 유럽 귀족 문화에서 유래되었지만, 19세기 이후 도시를 중심으로 한 공업 노동이 대다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데 중추적인 기여를 하게 되면서 의복은 간편한 현재 모습으로 변모해 정착했습니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지금 입고 계시는 옷이나 현재 한국 사람들의 옷, 중국과 러시아 사람들의 옷이 거의 비슷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배경을 놓고 봤을 때, 북한당국의 계획과 지시로 제작된 여성 옷들이 서구 명품의 도안을 본떠서 제작된 것은 왜 문제일까요? 일부 ‘전시회’에서 선보인 옷들이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을 영국의 자본가들이 세운 회사의 제품 문양을 본떴다는 점이 문제일까요? 혹은 다른 나라 회사의 지적재산을 북한 공장들이 허가 없이 자체 제작한 것으로 포장해서 전시한 것이 문제일까요? 그도 아니면, 북한당국은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 본류의 상품들을 베껴서 쓰면서 주민들에게는 외국 문화 영향을 차단하라고 주장하고, 청소년들의 의복을 외국 문화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하면 처벌까지 하는 것이 문제일까요?
제가 보기엔 이 모든 것이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북한당국의 원칙과 주민들의 일상 생활에 강요하는 지시 사이에 일관성도 없고, 논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북한당국은 외국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도 되고, 주민들은 안 된다는 이 원칙의 불일치를 말하는데요. 당국은 해도 되고, 주민은 안 된다는 접근은 주민들이 당국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불일치를 일치로 만드는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세계 대부분의 현대식 옷이 다 비슷비슷하니까 우리 주민들이 어떤 옷을 입든지 무관심하게 여기는 정책을 택하는 것입니다. 의상을 두고 사회주의네, 자본주의네 이념을 주장하는 것은 인류가 과거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돌과 나무에 신령이 들었다고 믿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같은 원시적인 생각에 기초해, 조금 다른 옷 모양을 보고 한국 문화와 반동사상의 영향이라고 청년들을 형사처벌하는 행위는 당장 그만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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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