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흔한 일들이지만 국제사회와 평범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위법이거나 불법이어서 통용되지 않고 처벌받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노동과 직업 관련 분야에서도 그런 사례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최근 북한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제노동과 근로조건 등에 대한 보고가 언론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지난 26일에는 미국의 시민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가 ‘‘수용소 주식회사(Gulag,INC)'라는 보고서를 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광산지역에 적대계층 사람들을 ‘무리배치’시켜서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북한당국이 올해 제대할 군인들을 단천발전소 건설현장과 ‘세포축산농장’에 무리배치 한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북한당국이 청년들과 제대군인들을 ‘무리배치’시켜 농장이나 광산 등에서 일을 시키고 있는 현실이 국제 인권법에 비추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북한당국이 사람들이 꺼리는 농촌이나 산간 오지에 제대군인들을 대단위로 배치시키는 일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1998년 10월에는 김정일이 대홍단을 방문했다가 넓은 감자밭을 보고 그 자리에서 제대군인 천여 명을 보내주기로 약속하고 1998년에 제대하기로 되어 있던 군인 천명을 양강도 대홍단군 감자농장으로 무리배치시켰습니다. 또 2000년 초에 삼지연군 포태농장에도 천여 명의 제대군인이 배치되었습니다. 2009년 12월 김정일의 지시로 양강도 백암군에 감자농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그 다음해 8월경에 3천여 명의 제대군인들이 무리배치되었습니다.
무리배치는 제대군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고등중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도 집단으로 특정 공장에 무리배치가 이루어집니다. 일반적으로 노동강도가 높고 근무환경이 좋지 않는 공장에 한 지역의 고등중학교 졸업생들을 대거 무리배치 시키는 경우들입니다. 평양방직공장이나 약전기계(전자기계)공장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집안이 좋고 부모가 권력이 있는 학생들은 능력이나 학업성취도와 상관없이 대학교로 뽑혀 갈 수 있기 때문에 무리배치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 외 출신성분이 좋지 않고 부모가 돈도 권력도 없다면 그 순위에 따라 군대로 보내지고, 그 보다 못한 학생들은 무리배치로 직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전쟁 이후 국군포로의 처리과정에서 진행된 강제이주와 강제노동이 무리배치의 역사적 기원이 될 것입니다. 전후 1953년부터 국군포로들이 함경북도 온성의 탄광지구로 집단적으로 강제 이주돼,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국군포로 본인만이 아니라 자녀들마저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교육의 기회도 박탈당한 채 탄광에서 광부로 인생을 보내야 합니다.
남한의 통일연구원이 2015년에 내놓은 ‘북한인권백서’에도 이런 문제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인권백서는 주로 무리배치가 되는 곳은 탄광이나 농장, 건설현장 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리배치의 최근 몇 년간 통계자료도 백서에 나와있습니다. “2010년 경성지구 탄광에 1,000명, 혜산광산 200명, 무산광산 100명, 길주 석송탄광 1,000명, 2011년 혜산시 농장 3,000여 명, 2012년 혜산청년광산 300명, 양강도 백암군 농장 500명 등” 무리배치가 이루어졌다고 백서는 밝혔습니다.
사람이 백 명이 있으면 백 가지의 각기 다른 능력, 취향과 성격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북한당국은 이런 개인적인 다양성과 잠재력을 깡그리 무시하고 한창 능력을 키우고 학습할 시기의 십대 이십대 청년들을 최고지도자의 방침 하나에 따라 한 직장에 다 몰아 넣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과는 달리 북한의 사회주의 노동법의 제5조는 “모든 근로자들은 희망과 재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며 국가로부터 안정된 일자리와 로동조건을 보장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직업선택의 현실은 북한 노동법뿐만이 아니라 북한의 지도적 지침의 하나인 주체사상의 기본에도 어긋납니다. 주체사상은 창조성, 자주성, 사회적 협조성을 인간이 가지는 가장 고귀한 속성이라고 가르치고 있지요. 하지만 북한당국은 인간의 창조성이 가장 활발한 시기의 수많은 청년들을 한 직장에 배치시킴으로써 청년들의 자주성과 창조성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무한한 잠재력을 말살시켜 버린 것입니다.
유엔 산하 모든 기구의 가치와 국제적 인권기준의 근간이 되는 세계인권선언에서도 모든 인간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23조는 “모든 사람은 일할 권리,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일할 권리, 실업상태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지도이념에도, 국제인권법의 가치기준에도 위배되는 무리배치는 자주성과 창조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김정은이라는 최고지도자를 위한 돈벌이 기계의 부품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처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