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영국에서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지난 14년간 집권해오던 보수당을 압도적인 의석 차이로 제압하고, 진보 성향의 정당인 노동당이 정권 교체에 성공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제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가 총리로 영국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스타머 총리를 중심으로 새로 정비된 노동당 내각 구성이 꽤나 흥미로워서 세계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는데요. 소위 말하는 ‘흙수저 출신’ 장관들이 주류이기 때문입니다. ‘흙수저’라는 말은 18세기 영국 왕실과 귀족들이 당시 귀한 금속인 은으로 만든 호화스런 수저를 사용했다고 하여 ’은 숟가락을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영어 숙어에서 비롯된 은유적 표현인데요. 한국에서는 잘 사는 집안의 자녀를 ‘은수저 출신’, 또 최근에는 ‘금수저 출신’이라고도 하고, 그에 반해 ‘흙수저’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을 일컫는 표현으로 사용합니다.
앞으로 영국을 이끌어갈 내각의 22명 장관들 중 단 한 명만이 ‘은수저 출신’으로 부자들이 주로 다닐 수 있다는 사립 중등학교 출신자로 알려졌습니다. 그 외에는 국가 복지 차원에서 저소득층을 위해 싼 가격에 임대하는 ‘공공주택’에서 자라난 인물이 교육부 장관직을 맡았고요. 부총리는 40대 중반의 안젤라 레이너라는 여성인데, 불우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6세에 임신해서 다니던 공립학교마저 자퇴하고 학업을 중단한 경험까지 있답니다. 레이너 부총리도 가난한 계층 주민을 위한 공공주택에서 난방도 제대로 못 사용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고, 모친은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분이었답니다. 레이너는 당시 노동당 정부의 저소득층 복지 사업의 도움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었고, 본인도 대학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대학졸업 후에는 작은 마을에서 수년간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고치기 위해 노동조합 간부로 일했다고 합니다. 레이너 부총리의 노조 활동이 노동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였답니다. 이제는 영국 정부의 2인자로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레이너 부총리를 포함해서 새로 구성된 영국 내각의 22명 장관들 중 11명이 여성 장관입니다. 영국 역사상 최초의 재무장관도 이번 노동당 정권에서 나왔는데, 영국 정치 800년 역사상 첫 여성 재무장관이라고 언론들이 칭찬합니다. 법무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 내무부 장관도 여성입니다.
물론 여성장관이 절반 이상인 내각이라고 무조건 다 정치를 잘할 내각이 될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는 칭찬할 만합니다. 첫째는 여성이냐 남성이냐 라는 이유로, 혹은 가정 형편이나 부모의 권력 유무에 따라, 혹은 열악한 다른 태생적인 조건 때문에 사람의 능력도 파악하지 않고 배제하거나 등용하는 차별은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사회적 약자들도 능력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교육 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뒷받침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흙수저 출신도, 은수저 출신도 같은 출발선에서 모두 능력껏 노력하고 공부해서 성공할 것이라는 사회적 공동의 희망을 갖는 것은 국가는 물론이고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서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최근 북한의 제8기 10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의 근로단체부장 자리에 김정순 부장이 여성으로 임명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북한 노동당 외곽조직들을 총괄하는 선전선동의 핵심부서장이 여성이란 소식인데요. 이를 계기로 북한도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기 시작한 게 아닌가 기대를 해봐도 될까요? 소외 계층과 지방 출신자, 적대계층 출신자들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례들이 계속 나오는 걸 확인해야, 북한의 차별문제에 대해서 새로이 평가할 수 있겠지요.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태생적인 조건 때문에, 직업 선택이나 교육 기회에서 차별 받는 것은 그 자체가 인권유린입니다. 북한도 백두혈통 가계가 아니어도 중앙에서 지도부가 될 수 있고, 남한 출신자 가계의 자손들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농촌 출신자들도, 여성들도 차별없이 능력에 따라 정치계에 뛰어들 수 있고, 검사나 판사도 될 수 있다면 북한의 차별 문제는 더 이상 불거지지 않을 겁니다.
이번 영국의 새 정부 내각 구성을 보면서, 북한의 흙수저 출신자들이 정계에 진출해서 제 능력을 거리낌 없이 발휘할 수 있는 시기가 하루 빨리 오길 바라봅니다.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