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비영리 연구교육 기관인 ‘평화기금’이라는 단체는 매년 전세계 179개 나라의 사회, 경제, 정치 부문의 안정성을 조사 평가해서 ‘취약국가지수’를 발표합니다. 지난 13일에 ‘2022년 취약국가지수’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국가를 불안정하고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 12개 지수들을 정하고 각 지수별로 10점을 가장 불안정한 상황으로 계산했는데요. 즉 12개 모든 영역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취약한 상태라고 점수를 받으면 총점 120점이 되는 식입니다. 이 평가에서 안타깝지만 북한의 취약성 지수는 89.1점으로 ‘고도로 경계할 국가군’에 속합니다.
12개 지수들의 기준을 살펴보면, 경제분야에서는 국가부채나 실질물가 상승률을 관찰해 경기하락이나 불공정한 경제발전 정도를 파악합니다. 정치적 기준에서는 정부가 주민들에게 신임을 얻었는지 여부, 주민들이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하는지, 지도부의 정권 교체가 투명하게 이뤄지는지, 지역공무원의 부패 정도 등으로 평가했고요. 인권과 법치 부문에서는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보장받는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는지, 아동들을 강제 동원하는지, 누구나 공정하게 재판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인권 상태를 관찰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국민건강, 식량문제, 환경문제, 경찰과 군대 등이 사회와 국가 안보를 위해 제 역할을 하는지도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기준에 따라 계산한 결과 북한은 179개국 중 취약한 국가순위로 32위에 올랐는데요. 전 세계 기준으로 보자면, 북한의 국가안정성과 평화 수준이 고도로 위기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연도별 변이를 보면 2006년에는 97.3점으로 세계 14위로 나빴지만 점차로 좋아져서 올해는 32위의 취약한 국가에 올라, 예전에 비해 전반적인 안정화가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기뻐할 수 있는 기록은 아닙니다. 인권과 법치 부문은 최악의 점수 10점 중 9.3점, 그리고 국제사회와 협력 부문에서 9.2점, 국민들이 정부에 가지는 신뢰도과 권위를 기준으로 평가한 점수는 9.9점입니다.
모든 국가들간 밀접하게 상호 연결된 현재 세계에서 취약한 국가로 인한 문제는 그 나라 국민이나 나라 자체에게도 나쁘지만, 이웃 국가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국가들까지 심각한 부정적 후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미얀마에서 벌어진 로힝야 인종에 대한 인권유린과 심각한 차별문제가 그 지역의 난민문제로 나타난 사례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유럽 전역의 난민과 인도주의 문제에서 위기를 맞은 상황이 여기에 해당되겠지요.
북한의 취약한 국가 안정성으로 빚어진 사건 하나가 최근 한국 내 초미의 관심사안이 됐습니다. 2019년 11월에 남한의 동해안 삼척항에 1.8톤 규모의 북한 목선이 발견된 적 있습니다. 북한 선원 두 명이 타고 있었고, 남측 해군이 나포해 조사한 결과, 두 명의 북한 선원이 그 전에 어로 활동 중 선장의 폭언과 구타에 불만을 품고 선장을 포함해 선원 16명을 잔인하게 살해했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살해 후 두 명은 1.8톤의 목선을 타고 남으로 도주했던 것이지요. 이후 북한 선원들은 남으로 귀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당시 한국 정부는 정황상 귀순의사의 진정성이 없었다고 판단했고 잔혹한 살해를 저지른 전력 때문에 판문점을 통해서 북으로 송환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11일 한국의 새 정부는 그 결정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고 밝힘으로써 남한 정치계와 사회가 떠들썩하게 됐습니다.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 등 국제법의 기본원칙은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배경, 국적이나 종교적, 인종적 배경 때문에 박해를 당할 위험에 처할 법한 나라로 난민지위 신청자를 되돌려 보내는 것을 금지합니다. 뿐만아니라 범죄인 인도법에 따라서 다른 나라와 범죄인을 자국으로 송환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경우에도 앞서 설명한 이유로 위험에 처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범죄인이라도 해당 국가로 송환을 거절해도 됩니다.
만약 북한이 한국이나 보통 다른 나라들처럼 법치가 잘 이뤄져 정당한 법절차를 통해 처벌을 하는 사회로 알려져 있다면 한국 내 지금 같은 날카로운 찬반 토론이 무성하지는 않을 겁니다. 앞선 취약국가 지수에서 봤듯이 북한은 정치적 사안에서나 체제위협 요인으로 여겨지는 문제는 법보다 당국의 자의적인 결정이 앞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즉 난민신청자의 북송 후 부당한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살해를 저지른 북한 선원 두 명을 북송한 것으로 한국사회에서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북한이 다양한 부문에서 국제적 가치와 현대문명 체계가 잘 실현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남북한의 문제이자 동북아 지역의 갈등요소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복잡한 사례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국제인권규약의 기본원칙이 남북한 공히 쉽게 적용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혐의의 범죄인이라도 남쪽이든 북쪽이든 법대로 절차에 맞게 변호사를 선임해서 혐의자가 자신을 방어할 권리도 보장받고 형법에 따른 재판과 결정을 받을 수 있다면 이런 복잡한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남북한 경계선에서 벌어진 복잡하고도 참혹한 사건을 보면서, 북한에서도 법대로 인권이 보장되는 날을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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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