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세계 청년들에게 ‘중국’하면 떠올리는 모습에 대해 물어봤더니 ‘현대적 기술력,’ ‘빠른 경제발전,’ ‘강대국의 등장’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중국이 이제는 경제대국의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청년 세대들이 떠올리는 중국의 모습은 1960년 전후 3~4년 대약진운동으로 2천 5백만이 아사한 나라의 모습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렇듯 경제발전을 이룩한, 잘 사는 나라라는 중국에 대한 인식을 세계 사람들에게 뿌리 내리게 만든 지도자 등소평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 합니다.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 시기, 실용주의자였던 등소평은 자본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 즉 ‘주자파’로 몰려 해임 됐는데요. 모택동의 사망 이후 1977년 7월 22일 당 10기 3중 전회에서 등소평은 당중앙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위 부주석 등의 직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복귀 후 이듬해 당 11기 3중 전회에서 등소평은 ‘사상해방과 실사구시, 일치단결’을 내걸고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눈부신 중국의 발전을 만든 첫 단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부터 공산당의 당장을 ‘계급투쟁’에서 ‘경제발전’으로 바꾸고 국가적 관심을 정치이념 논쟁에서 주민생활 개선을 위한 경제로 비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중국의 경제발전은 1977년 1인당 국내총생산 185달러에서 2022년 12,550 달러로 껑충 뛰어 오릅니다. 이건 국가 경제발전을 핵심목표로 삼은 등소평의 신념이 크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등소평은 경제발전을 위한 실용주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을 배제할 필요가 있었고요. 누구도 정치체제에 있어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공산당 일당주의를 천명함으로써 정치분야에서 비효율적 에너지 소모를 차단했습니다. 또한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을 이행하기 위해서 당분간 충분히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100년간은 사회주의 현대화를 건설하겠는 의지를 굳건히 했습니다. 생산력을 한층 더 올리기 위해 다양한 소유제 경제를 발전시키는 제도를 견지하는 내용을 중국 공산당 당헌에 포함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의 협동농장과 같은 인민공사를 점진적으로 해체했는데요. 개인 생산의 사유화가 자연스럽게 발생한 영역에선 그대로 사유재산을 허용해주었는데 그게 농촌이었기 때문입니다. 집단이 아니라 가족단위로 농사를 지어서 개인 이익을 보장해줬습니다. 또 생산수단의 개인소유를 허용하면서 생산물 유통방식에서도 국가수매 분량 외의 생산량은 개인이 알아서 처분할 수 있었기에 개인소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전국적 차원의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선전, 해남도 등 5곳을 경제특구로 선정해서 해외 자본을 유치해서 선진기술도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혁신적 대기업들이 싹을 틔우고 발전할 수 있는 자본을 확보하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대도시 중심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도시 실업자들이 돈벌이 할 기회도 필요했기에, 개인들이 사업을 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등소평의 신념은 안정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정치 사상적으로 사회주의를 높이 내세우면서 자본주의 방식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방안이 모순적으로 보여 갈등을 일으킬 법도 했는데요. 등소평의 개혁개방을 향한 꿈은 ‘중국식 사회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을 발전시키며 주민들을 설득했고요. 그 결과는 세계 두 번째의 경제 대국의 중국을 만들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등소평이 이렇게 큰 그림의 경제발전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1920년에 16살 나이로 프랑스로 유학갔던 것이 크게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6년간 체험했던 프랑스는 당시 1차세계대전을 끝내고 세계적인 혁신가들이 다양한 꿈을 가지고 몰려들던 황금시대였습니다. 문화 예술은 물론 기술, 과학, 경제, 지식 분야까지 세계 지성인들이 동경하는 곳이었습니다. 무너져가는 중국과 황금기를 누리던 프랑스를 보며 등소평이 꿈꾸던 조국 중국도 그렇게 발전시키겠다는 신념을 뿌리내릴 수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등소평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위원장도 자유롭고 혁신적인 스위스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유학시절 등소평이 가졌던 잘 사는 조국에 대한 꿈을 김정은 위원장도 충분히 가졌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여기에 더해 북한당국이 북한 인민들에 대한 믿음만 더 굳건히 가진다면 경제분야에서 충분히 중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을 겁니다. 즉 북한당국이 인민들에게 모든 부문에서 ‘경직을 풀고 새 세기에 맞게 대담하게 혁신하고 새 것을 창조해 나갈 것을 요구’하는데요. 인민들을 믿고 당국이 먼저 혁신하고 경직도 풀게 되면 중국이 했던 경제혁신을 북한도 실현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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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