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이동의 자유 박탈이 만들어낸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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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인간 개개인의 권리 개념 중 가장 표준이 되는 인권가치를 담은 국제규약 중 하나입니다. 유엔이 지정한 규약으로 유엔 회원국 중 171개 국가가 이 규약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고 북한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즉 북한도 이 국제규약의 내용과 가치를 전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하고 행정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국가라는 뜻입니다.

유엔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2조 이동의 자유와 거주지 선택의 자유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2조의 1항은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한 세부항으로, 사람은 누구나 법적으로 국가의 영토 안에서 이동과 거주지를 선택할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했습니다. 2항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속한 국가든 다른 나라든 어떤 나라라도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누구라도 자국으로 되돌아 올 권리를 강제로 뺏겨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최근 이 국제규약이 설명한 이동의 자유와 거주지 선택의 자유가 없어서 생긴 비극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어서 설명 드린 건데요. 일본에 살고 있는 탈북민 5명이 지난 22일에 북한 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미화 450만 달러의 손해배상 요구 소송을 도쿄 지방재판소에 제기했습니다. 다섯 명의 탈북민들은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진행된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인데요. 2000년대에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탈북해서 다시 일본에 정착했습니다. 북한당국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한 이유는 당시 북한당국과 조총련이 북한으로 갈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조직하면서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속여서 재일교포 9만 3천명 이상을 북한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북한당국은 무상으로 식량과 집을 제공하고 대학까지 보내준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겁니다.

당시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적 꿈들이 있었기 때문에 재일동포들은 사회주의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 하겠다는 생각으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북한행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니카타 항을 떠나는 북송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북송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일본에 두고 온 가족들과의 접촉도 거부 당했고 일부 사람들은 관리소에 수감되기도 했다고 설명합니다. 귀국자들은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통로로 여겨져 외화벌이 수단이 돼 경제적 수탈의 대상도 됐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동요계층이나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교육의 기회나 직업선택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인권유린의 대상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사자 본인만이 아니라 자식들의 교육의 기회 그리고 사회생활의 기회를 박탈한 것으로 대를 이은 인권유린이 이뤄진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째포'라고 불리며 많은 영역에서 차별의 대상이 됐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 가려고 했으나 허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적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탈북자들이 생겨나자 자력으로 브로커를 써서 수 많은 탈북자들이 단행한 탈북의 고생길을 거쳐서야 일본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겁니다. 북한당국이 앞서 말씀 드렸던 국제규약의 12조를 철저히 무시하고 위반했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1차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끝이 났는데요. 세계언론들도 앞다투어 금강산호텔에서 벌어진 이산가족들의 70년 만의 애달픈 상봉소식을 보도했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나 눈물을 흘리며 가족상봉의 애환을 함께 나눴습니다. 한반도 분단상황으로 인해 이동과 거주지 선택의 자유가 박탈되면서 빚어진 역사적인 비극입니다. 이산가족은 전쟁으로만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2000년 이후 북한을 탈출해 나온 3만 천명이 넘는 탈북민들 중 많은 이들도 북에 가족을 두고 나온 이산가족입니다. 이들 또한 주거와 이동의 자유 위반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방도는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물론 과거 70년 간은 다양한 국제정세와 남북문제로 인해 이동의 자유와 거주지 선택의 자유가 박탈될 수밖에 없었다고 핑계를 댈 수는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도 국가정상화를 가까운 미래에 상정해둔다면 빠른 시일 안에 이동의 자유가 허용이 돼서 불필요한 비극과 인권유린, 개인 통제의 악행을 해결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남한도 과거 1983년까지만해도 50세 이상 성인에게만 관광여권이 발급 됐고 1989년이 되어서야 한국 사람 누구나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단 한 달간 해외로 나간 남한 사람의 수가 2백50만 명에 달할 정도입니다. 북한도 이런 방식으로 천천히 국민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