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오류와 모순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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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당국은 주민들에게 ‘사회주의 양식’을 사회 모든 분야와 인민생활 전반에 반영하도록 강조합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사회주의 건설의 전면적 발전을 이룩’하자는 주장을 매일 내놓고 있는데요.

30일에도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확립’하자는 주장에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꿋꿋이 나아가는 혁명적 인민’이 될 것을 주민들에게 당부했습니다. 농업분야에서도 과학기술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난 시기의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모든 것과 단호히 결별하고 사회주의 전분야마다에서 과학 농사의 불길을 세차게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의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것을 뛰어 넘어’ 전면적 발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은 맑스-레닌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부정의 부정의 법칙’에 기반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즉 헤겔의 ‘정-반-합’의 삼단법에 기초한 생각에서 나온 것 같은데요. ‘정’의 모순으로 ‘반’이 제기되고, ‘반’ 즉 안티테제의 정립을 통해서 ‘합’이 이뤄지는데, 여기서 ‘합’은 초기의 ‘테제,’ 즉 ‘정’보다 더 적은 모순을 지닌다는 발전의 논리로,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북한에서 더 익숙한 개념일 겁니다.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상관 없이 무엇이든 변하고 진보하고 발전하는 데는 기존의 상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과거의 것을 뛰어 넘어야 혁신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나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북한 당국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반합 삼단법에 근거해서, 과거의 오류나 모순을 성찰하고 솔선해서 과거의 진부함을 뛰어넘어 혁신으로 향한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과거 일의 문제나 모순점을 인정하고 혁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는 큰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잘못이나 모순을 인정하는 것이 국가나 사회 또는 개인의 위신을 깎는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면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뛰어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경제와 정치, 문화에서 급속한 성장을 이룬 나라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가치관도 국가 발전 속도와 함께 빠르게 진보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까운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반성과 성찰, 화해와 용서가 필요한 일들이 적잖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는 사회적 통념상 묵인됐던 행위가 지금은 정교한 인권법이나 현재의 가치에 따라 제재해야 할 행위들로 인식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말인데요. 국가가 저지른 행위들도 마찬가지로 성찰과 반성과 인정을 통해 오류를 뛰어 넘어야 혁신과 진보의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최근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며 오류를 뛰어 넘는 시도가 돋보인 사례가 있었습니다. 지난 26일 한국의 윁남전 참전자회가 윁남 즉 베트남의 재향군인회와 만남을 가졌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반공사상을 내건 남베트남을 지원하는 미군에 협력해 윁남 전쟁에 파견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베트남 공산당 지도 하의 북베트남과는 적대적 관계입니다. 하지만 한국군 베트남 참전군들은 베트남 하노이에 초청돼 북베트남 정부 지도자 호찌민의 묘에 참배도 했습니다. 하노이 인근 불교 사원에서 베트남 불교협회장이 주관하는 베트남군 전사자들을 위한 위령제에도 참석했습니다.

50-60년 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한국과 윁남의 참전 군인들은 이번 만남에서 “지나간 얘기는 하지 말자,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국제 정세에서 전쟁을 했던 것이다. 50여 년이 지났기 때문에 상호 간에 친구가 되자”는 말들을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베트남 측의 재향군인회 참석자 중엔 장성 출신자들도 있었다는데요. 이들은 한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옛날에는 맞서 싸웠던 적이었지”라고 말하며 서로 웃었다고 전해졌습니다. 한국의 참전자회 측은 베트남 재향군인회에 고엽제 후유증 치료를 위한 한국 의료지원을 제안했고 한국 병원과 양해각서도 체결해서 올해 12월 경에 의료지원 관련 협의를 매듭지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빠른 속도의 역사발전을 경험했기에 그만큼 뛰어 넘고 반성할 사건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최근 빠른 속도로 성장 발전하고 있는 국가로 베트남이 떠오르고 있는데요. 이러한 용기가 있기에 지금의 혁신의 길을 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노동신문에서 강조한 ‘과거의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것을 뛰어 넘어 혁신의 길’로 향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북한도 90년대 말 고난의 행군을 거치고 2000년 이후 20년 이상 거대한 사회적 변이를 거쳤는데요. 그런 과정에서 국제사회에서 지적하는 인권문제를 포함해서 여러 문제에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민들에게만 사회주의 양식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말하는 변화 발전의 논리에 따라 북한당국도 오류를 뛰어넘어 진보와 발전을 위한 혁신을 길을 택하길 바래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