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스’라는 비영리 국제 민간단체가 지난 15일 ‘2022년 뇌물위험지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세계의 194개 나라들에서 뇌물이 얼마나 심각하게 위기 상황을 만들어 내는지 측정해서 점수를 매겼는데요. 보고서에서는 상업적 뇌물 위기가 가장 심각한 국가로 투르크메니스탄, 적도기니, 시리아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북한을 꼽았습니다.
보고서는 다음 네 가지 조건에 근거해 조사했습니다. 첫째로 사회 민간 부문에 미치는 정부의 영향력과 뇌물을 기대하는 심리 정도, 둘째는 뇌물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와 뇌물을 처벌하는 법률의 강도, 세 번째 근거는 정부의 투명성이며, 마지막은 부정부패를 추적하고 폭로하는 시민사회의 능력입니다. 이 네 가지에 기반해 뇌물이 그 나라의 경제와 상업 분야에 얼마나 심각한 걸림돌이 되는지 분석했습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북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북한당국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민간의 상업 부문에 개입하고, 둘째로 사회적으로 뇌물이 문제라는 의식이 거의 없어 뇌물 행위를 만류하지 않고, 셋째로는 정부의 정치 행위가 대단히 불투명하며, 마지막으로 뇌물수수 행위를 감시하는 언론매체의 자유가 없고 시민사회의 감시 활동이 매우 저조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각 국가에 뇌물 위기 점수를 매겨 점수가 높을수록 뇌물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으로 보는데 100점 만점에서 북한은 93점을 받았고, 194개 국가 중 194위에 올라 가장 심각한 뇌물 국가로 지목됐습니다.
하지만, 뇌물 문제와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북한당국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 초에 있었던 2차 초급당비서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의 사소한 요소도 나타나지 않도록 강도높은 투쟁'을 벌일 것을 강조했습니다. 노동신문에도 부정부패 행위를 근절하려는 방침이 거의 매일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문제해결을 위한 북한당국의 의지는 충분히 알려집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아무리 ‘특등 세도꾼, 관료주의자들을 모조리 찾아내고 (중간 생략) 간부 대열에서 단호히 제거해버린다’고 위협해도, 북한 사회 구석구석에 깊이 뿌리 내린 뇌물 수수 관행이 고쳐질지는 의문입니다. 북한의 상업 및 경제 활동 체계와 국가의 행정체계가 뇌물과 세외부담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을 대면하는 업무를 하는 간부들이 배급과 월로임(월급)만으로 넉넉하게 생활할 수 없다면, 간부들은 주민들에게 뇌물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장기적으로 꼭 필요하거나 주민들을 위해 긴급하게 봉사해야 하는 부문의 종사자들은 반드시 충분한 로임을 받아야 합니다. 즉 학교 교원들과 의사, 특히 보안원과 보위원, 검찰 등이 대표적으로 넉넉한 월급을 받아야 하는 부류입니다.
현실적으로 교원들과 의사가 거의 무임금 노동을 하다 보니, 학생들과 환자가 주는 뇌물에 의지해 생계를 꾸릴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따라서 뇌물을 줄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은 학교 다니길 포기하고 돈 없는 환자들은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치명적 문제가 대두되지요. 보안원과 보위원들의 월급이 넉넉지 못하니 애꿎은 주민들만 위협의 대상이 되어 뇌물이나 ‘숙제’를 바쳐야 무사히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국가발전 5개년 계획에 따른 살림집이나 기타 국가 시설물 건설에 동원되는 돌격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사람들과 인맥이 좋은 집안 자식이나, 능력 있는 청년들은 돈벌이도 안 되는 돌격대에 지원하지 않습니다. 뇌물 주고 동원에서 빠지면 되니까요. 그러나 돌격대에 동원된 건설 노동자들에게 힘들고 위험한 노동에 참가하는 만큼 더 크게 보상해 준다면 돌격대도 희망 직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무원들과 대상건설 참가 노동자들에게 로임을 줄 수 있으려면 국가가 돈을 벌 수 있어야 하는데요. 다른 나라들에서 국가의 수입은 투명한 방식으로 국민들 수입의 일정 비율을 거두는 세금입니다. 북한이 헌법과 관련 법령을 바꾸면서까지 당장 세금 제도를 도입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우선 공장 기업소의 더 많은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8.3 노동을 하도록 허가하고 여기서 나온 수입 중 일정한 비율을 정해서 수입금으로 거두면 되겠지요.
북한당국도 간부들과 당원들에게 부정부패를 처단한다는 엄포만 놓을 것이 아니라, 뇌물을 발생시키는 원인을 찾아내고 체계를 다듬는 방안을 강구하길 바랍니다. 이러한 방식이라야 오랫동안 길들여진 뇌물수수 관행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내년 뇌물위험지수에서도 194위를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