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시장 확대가 인권 보장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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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규정한 인간의 권리 중 경제적 권리에 대한 규약이 있는데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으로 줄여서 ‘사회권 규약’이라고도 부릅니다. 인간 존엄성을 존중 받는데 필수적 요소들 중 하나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가 환경과 조건을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규정입니다.

북한은 1981년에 최고인민회의에서 이 규약을 비준함으로써 사회권 관련 권리들을 북한 국내법으로도 보장해서 모든 주민들이 누릴 수 있게 할 것을 유엔에 약속했습니다. 즉 유엔 회원국인 다른 나라 국민들이 누리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들을 북한 주민들에게도 보장할 것을 북한당국도 약속했다는 의미입니다.

사회권 규약의 경제적 권리 중 제6조는 “당사국 즉 북한당국은 모든 북한 주민들이 자유로이 선택하거나 수락한 노동으로 생계를 영위할 권리 그리고 근로권을 인정하고 보호한다”고 명시했습니다. 11조는 “북한당국은 모든 북한 주민들이 적당한 식량과 의복, 주택 등 가정을 꾸려 나가기에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생활조건을 개선할 권리를 인정하며, 이를 위해 주민들의 적당한 생활수준과 생활 개선을 위한 적합한 조치를 취한다”고 규정합니다.

지난 23일 한국의 통일연구원이 ‘2022년 북한의 공식시장 조사 결과 토론회’를 열었는데요. 북한 시장 연구를 진행한 전문가들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공식시장의 개수가 414개로 2017년에 집계한 개수보다는 3개가 늘었습니다. 연구원은 위성사진으로 보이는 시장의 크기를 계산해서 매대의 개수도 분석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공식시장에서 운용되는 매대는 대략 114만 개 정도로 추정했고요. 시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는 114만 4천 명 이상이라 합니다. 이 수치는 2016년에 조사했던 시장 종사자 수보다 45,016명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즉 북한 인구 전체의 4.7%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시장 관리원이나 장사꾼으로 일한다는 뜻입니다. 보통 시장에서 장사하는 부인이 세대를 책임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보다 3~4배 더 많은 약 14~19%의 인구가 시장에 의존해 살아간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장사 인구뿐 아니라 물건을 운반하는 노동자부터 물류 유통에 종사하는 거간꾼, 운전사 등 부수적인 시장 종사자와 골목장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인구가 시장에 의거해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충 잡아도 25~30%의 북한인구가 시장에 의존해 생계를 꾸려가는 형편이라면 앞으로도 시장을 통제 또는 배제한 환경 속 북한주민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 조사에서 눈에 띈 한 가지는 장세로 거둬들이는 금액인데요. 2017년 한 해에 장세 최대 추정치가 국돈으로 환산해서 9천 793억 5,600만 원이 넘었고요. 2019년 코로나 대유행병 직전 연도에는 1조 3천 189억 7,713만 원이 넘었습니다. 2022년은 1조 9천억 원을 웃돌 것으로 봤습니다. 2017년과 비교했을 때 거의 1조 원이 많은 금액입니다.

물론 북한의 통계가 투명하지 않은 까닭에 위성사진과 탈북민의 설명을 분석해서 장세까지 추정한 것이므로 현실과 온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2교대 장사나 코로나 때문에 거리를 더 띄워서 매대를 배치한 상황, 그리고 상인 한 명이 두세 개 매대를 운영하는 상황 등을 감안해서 최소치와 최대치를 계산했는데요. 따라서 이 수치들이 가리키는 대략적인 경향은 맞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미약하나마 시장이 확대되고 시장 종사자의 수가 증가한 것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2017년과 2022년의 환율이 8,100원 내외로 차이가 몇십 원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장세가 거의 1조 원 이상이 더 걷혔다는 말은 장세가 두 배로 뛰었다는 말인데요. 시장의 장사 수입에 비례해서 장세가 증가됐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코로나 대유행병 방역정책으로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에 시장에 유통되는 중국 상품들이 대거 줄어서 시장이 위축됐고요. 시장 활동시간 단속도 더 엄해졌다는 소식도 자주 들려와 시장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배로 뛴 장세는 시장 장사로 주민들이 얼마를 버는가에 상관없이 국가가 필요한 만큼을 장세로 거둬들이는 불합리한 반 시장정책으로 보입니다.

2020년 2월 북한당국은 사회주의 상업법의 일부를 수정 보충했고, 이에 대해 “상업부문 사업에 대한 지도와 영업허가 등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워 국가의 상업 정책을 철저히 집행하고 합리적으로 조직하여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법적 담보가 마련됐다”고 북한 언론매체가 평가한 적 있습니다. 또 상업법에서 ‘사회주의상업은 인민들의 물질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 정책은 주민들의 수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요. 이러한 현실은 북한당국이 유엔의 사회권을 비준함으로써 북한주민들이 적절한 경제생활을 누리고 생계를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한다고 약속한 내용에 반대됩니다. 시장 경기가 나쁨에도 불구하고 장세를 올리고 시장 활동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주민들의 사회권을 침해하는 정책으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