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청진시의 고급중학교 학생 7명이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시청하다 적발돼 처벌받았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학생들은 USB 기억장치에 저장한 ‘오징어 게임’을 친구들과 돌려보다가 109 연합 지휘부 검열에 단속됐다는데요. USB를 들여온 사람은 총살형을, 구입해서 시청한 학생들은 무기 징역형을 받았고 함께 시청했던 친구들은 교화형 5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이 사건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나온 이후 청소년을 처벌한 첫 사례로 알려졌으며 북한당국이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한국 드라마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전파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영상을 제공하는 넷플릭스에서 지난 9월 공개된 이후 1억 1천 1백만 명이 시청했는데요. 넷플릭스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인기를 끈 드라마라고 합니다. 지난 19일에는 ‘지옥’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또 넷플릭스에 소개됐는데요. 이 드라마 또한 소개된 지 하루 만에 전 세계 24개 국가에서 최고 인기 드라마로 기록됐습니다.
대중문화 분야에서 연일 기록을 깨고 있는 것이 한국의 드라마뿐만은 아닙니다. 한국 대중 가수인 BTS 방탄소년단 또한 국제 대중음악 분야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미국의 3대 음악 시상식 중 하나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대상 격인 ‘올해의 음악인’상을 BTS가 받았습니다. 아시아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인 대중음악가들이 이 대상을 받은 건데요. BTS의 노래 ‘버터’는 미국의 권위있는 대중음악 주간 잡지인 ‘빌보드’ 잡지에서 10주 동안이나 최고 인기 음악 1위를 차지한 바 있어서 올해 최장기간 1위 곡으로 등극했습니다.
한국의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가 전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세계인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 현상이 참 신기한데요. 한국은 정치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인 민주화의 역사를 썼습니다. 며칠 전에 타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매개되어 군사 독재 체제의 막을 내린 역사가 있었지요. 1980년대 한국은 전두환의 군부 쿠데타로 시작됐지만 1987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항쟁을 통해 전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하며 민주화의 연착륙에 성공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은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서구 선진국들은 수백 년 동안 이뤄낸 민주화와 경제 성장의 역사를 한국은 짧게는 20년, 길게는 60년 안에 성취한 건데요. 따라서 문명과 문화적 교양 수준이나 정치적 성숙도면에서 서구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떨어진다는 우려와 비판이 항상 존재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20년간을 돌이켜 보자면 한국은 경제적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문화 영역에서도 세계 수준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 시기에도 한국은 수출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펼치면서 한국 산업의 경쟁자와 소비자를 국내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즉 세계 선진적 기술과 월등히 높은 수준의 문화 생산물들을 바라보며 한국도 더 수준 높은 결과물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다그친 것이 그 결과라는 뜻입니다. 국제적 수준을 우리의 수준으로 만들려는 노력의 결과 이제는 국제적 수준을 뛰어넘어 한국의 상품과 가치가 국제 수준을 이끌게 됐습니다.
한국 대중문화 생산자들은 국제 대중문화 시장의 소비자들이 공감하는 바를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감수성을 갖췄는데요. 이제는 그 판세가 뒤바뀌어 한국의 문화적 취향을 국제 대중들이 따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겁니다.
한편 26일 노동신문에는 ‘명작 창작의 선구자, 선각자가 되라시며’라는 기사가 올라왔는데요.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전면적 개화기를 열어야 한다’는 김정은 총비서의 말을 인용해 2014년에 조선 4.26 만화영화촬영소 현지 지도에 대한 창작가들의 기억을 서술한 기사입니다. 배우, 미술가, 작가들이 김정은의 방문으로 큰 감화를 받아서 만화 영화를 잘 제작했다는 것이 기사의 핵심인데요. 물론 남북한의 문화는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만, 앞선 설명처럼 남한은 발전하려는 수준과 경쟁상대를 세계 선진국으로 두고 세계로 뻗어가려 하지만 북한 대중문화 예술가들은 세계는 고사하고 북한 인민들의 흥미와 안목에도 호응하지 않고 오직 김정은 총비서의 가르침에만 귀 기울이는 문화 창작의 현실을 노동신문이 잘 보여준 것입니다.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른 청소년들의 피해 사례들이 거의 매일 한국 언론에 소개되고 있는데요. 북한 국내 문화 소비자의 흥미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중문화를 생산하면서 남한의 문화를 즐기려는 청소년들을 중범죄자처럼 처벌해서는 김정은이 주문한 ‘문화 예술의 개화기’는 오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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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