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26세 김정은, 36 세 칠레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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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대륙의 서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칠레'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칠레에서 지난 21일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왔는데요. 1986년 생인 가브리엘 보리치 (Gabriel Boric)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이에 따라 2022년 3월 11일부터 36세의 보리치 대통령이 칠레를 대표해서 국가 수반으로 역할을 시작합니다.

물론 김정은 총비서는 보리치 대통령 당선자보다 열 살 더 어린 나이에 국가 수반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민주 국가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은 백두혈통으로 태어나 당연하게 후계자가 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칠레는 자유 선거제도를 2012년부터 도입했는데요. 이번 대선은 국민의 56%가 참여해 칠레 역사상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보리치 당선자는 상대 후보보다 10% 이상 득표해서 당선됐습니다.

대통령 당선자는 "칠레의 미래는 더 푸를 것이며, 더 공정한 나라가 될 겁니다" 라고 말하며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펼칠 것을 다짐했습니다. 정책으로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의 실시, 국민연금 제도 개선, 공교육 투자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거대 기업들에서 세금을 비례적으로 더 거둬서 국가예산을 늘리겠다는 공약도 했는데요. 전형적인 진보성향의 정책 공약이 국민적 지지를 얻는데 기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보리치 대통령은 현재 진행 중인 헌법 개정 절차를 성공적으로 마치겠다고 약속했는데요. 칠레는 과거 1974년부터 1990년까지 독재 체제를 유지한 피노체트 정권 당시 만들어진 헌법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보리치 정권이 출범하면 개헌위원회에서 초안을 잡고 있는 새 헌법을 국민투표를 거쳐 새로운 헌법체계를 갖출 예정입니다. 이 같은 중차대한 국가 변혁을 36세가 되는 청년 대통령이 이끌어 나가게 되니 기대가 됩니다.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제법 많은 30대 국가 정치지도자들이 등장해 성공적으로 국가수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북유럽의 발틱 해에 인접한 나라, 핀란드는 여성 총리 산나 마린이 2019년, 34세로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남태평양해의 섬나라 뉴질랜드는 2017년에 39세의 여성 정치인, 저신다 아던이 총리가 되어 활약 중이고요. 아던 총리는 코로나 대유행병을 효과적으로 대응한 공로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청년 정치지도자로 크게 주목을 받았던 사람은 아무래도 2017년에 당선된 프랑스 대통령 임마누엘 마크롱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시 39세였는데요. 프랑스의 노동규정을 개정해서 거대한 노동조합의 권력을 축소하고 기업에게 노동자 고용과 해고의 자유를 줌으로써 실업률을 대폭 감소시킨 공로를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청년 정치인들의 활약은 청년들의 정치활동을 격려하는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가 그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청년들이 참여해 정치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청년 정치조직이 있습니다. 북한의 노동당 외곽조직인 사회주의청년동맹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단체인데요. 유럽 등지의 청년단체들은 정치인이 되어 사회적 변화와 발전을 이뤄내길 꿈꾸는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여기서 국가정책과 사회적 현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며 정치적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이 꿈꾸는 사회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청년들이 정치활동에 관심을 갖는 겁니다.

남한만 하더라도 나이에 따른 서열을 중시하는 오래된 관습 때문에 청년층의 생각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은데요. 하지만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국민투표로 선출하기 때문에 투표할 수 있는 국민들 중 20-30대가 34%나 되는 현실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따라서 최근 정치인들은 20-30대의 눈치를 보며 청년들에게 호감을 얻을 정책들을 구상하기 바쁜데요. 이 또한 청년 정치인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회적 분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20-30대 청년들이 정치적 꿈을 갖고 자유롭게 정치에 입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일까요? 김정은 총비서는 "당조직들은 당의 청년중시사상을 높이 받들고 청년들을 적극 내세워주며 청년들과의 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청년의 역할을 돌격대나 인민군대 군인의 역할로만 국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려됩니다. 물론 건설 노동자와 군인의 역할도 국가발전을 위해 중요합니다만, 미래를 만들어 나갈 청년 정치인의 발굴 또한 국가발전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예에서 봤듯이 청년들이 국가의 변화, 발전과 개혁적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정치적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청년 정치인들이 성장 가능하며 국가도 그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