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말실수'로 보는 문명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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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한의 몇몇 주요 정부기관 장관들이 새로 임명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최종적 장관 임명 결정이 있기 전에 신중하게 여러 단계를 거쳐서 간부사업이 진행됩니다. 장관 내정자가 정부기관의 수장으로서 충분한 업무 수행 능력과 인간 됨됨이를 갖추고 있는지 파악하고 대국민 여론도 짚어보기 위해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칩니다.

국회의원들은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내정자에게 다양한 질문들을 하는데요. 내정자가 쓴 학위논문에 문제는 없는지, 부동산 투기는 하지 않았는지, 뇌물수수나 부정청탁부터 음주운전까지 불법 행위는 하지 않았는지, 자녀들은 군복무 의무를 잘 수행했는지 등 모든 것이 인사청문회의 질의대상입니다. 심지어 내정자가 과거에 한 행동이나 발언들이 품위가 없거나 인성에 문제가 있어 보일 경우는 국민적 여론에도 큰 영향을 주는데요. 정부의 중요한 정책 집행자가 될 인물에 대한 검증 절차이므로 인품이 좋은 인물인지 판단하는 절차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했던 발언들이 특정 약자들을 비하하거나 혐오스런 표현이었다면 전 국민적 여론이 크게 나빠집니다. 장애인이나, 노인, 여성, 가난한 사람들, 또는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에 대해 상스러운 말로 비하하거나 수모를 주는 말을 했을 때, 그 내정자는 약자를 무시하는 사고를 가졌다고 여론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기 마련이지요.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를 투영해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언행은 그 사회의 발전과 진보의 궤도와 함께 가고 있습니다. 남한은 1980-199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적, 문화적, 사회 정치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뤄냈고 사람들의 의식에도 큰 진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1990년대를 거치면서 남한사람들 속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문화가 더 널리 퍼져 수용되기 시작했는데요. 1989년 12월 30일 과거에는 '심신장애자복지법'이라고 부르던 법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하고, 장애인을 가리키는 많은 표현들이 순화돼 사회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정신박약'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표현을 사용했다면 그 후로 '지적장애'로 바뀌었습니다. '불구자'는 80년대 이전까지 일반적인 용어였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부정적인 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장애인을 지칭하며 멸시와 비하의 의미를 담은 단어들은 이제는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신문기사나 텔레비젼에서도 점차 쓰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는 물질적 변화보다 느리기 마련이므로 약자를 가리키는 혐오스런 표현들이 사용되면서 간혹 차별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남한의 한 소수 정당인 정의당 의원들이 흥미로운 사회 홍보 계몽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이라는 계몽운동입니다. 과거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던 표현인데 사실은 차별, 혐오와 무시, 비하의 뜻을 품고 있어서 이젠 사용하지 않는 말들을 인터넷의 사회 연결망에 소개하는 운동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를 확산하자는 의도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자가'라는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왜냐면 한 여성을 칭찬하면서 '여자가 대단해'라는 말을 했다면, 원래 여자는 열등한 존재인데 그 여성은 뭔가 이뤘으니 대단하다는 문맥이기 때문에 차별의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여자가 약속을 안 지키냐'라던가 '여자답지 못하게' 이런 표현들도 여자를 폄훼하는 고정관념에서 나온 표현이므로 쓰지 않는다고 소개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일상적인 표현이었던 '절름발이'라는 말을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데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균형이 흐트러져 편향되거나 기울어진 것을 설명할 때 과거에는 보통으로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다리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모멸감과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용납되지 않습니다.

남한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의 진보와 문명화는 이들이 쓰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인사청문회에서 과거에 했던 잘못된 발언들이 밝혀져 곤혹을 치른 장관 내정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직도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는 의미여서 안타깝습니다. 북한에서도 말을 잘못해서 곤욕을 치르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특히 3대 장군에 대한 말반동 때문인데요. 이 경우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생명에 위험을 초래 할 수 있어서 정말 위험합니다. 몇 년 전 저는 요덕에 있는 15호 관리소의 혁명화구역 수감자들에 대한 조사를 한 적 있었는데요. 수감자들 대다수가 말반동 때문에 관리소로 끌려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남한에서는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해 말실수를 했을 때, 북한에서는 최고 권력자에 대해 말실수를 했을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북한도 최고존엄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최우선으로 배려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와 문명이 언젠간 자리잡게 되겠지요.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