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아파르헤이트와 싸우던 투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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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세계적 존경을 받는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90세의 일기를 끝으로 생을 달리했습니다. 데스몬드 투투는 아프리카 대륙 최단남에 위치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종교인이자, 인권 옹호 활동가이며 시민운동가로 명성이 높은 인물인데요. 특히 흑인으로서는 최초의 천주교 주교가 된 분입니다.

데스몬트 투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1948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실시한 흑백 인종 간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해 투쟁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남아프리카는 백인들이 소수 인구이지만 정치적,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모든 분야를 주도하던 나라였습니다. 소수 백인 중심의 사회를 지속시키기 위해 권위주의 백인 정권이 인종차별을 제도화한 것이 ‘아파르트헤이트’입니다. 백인 시민들이 최상위 핵심 군중의 지위를 차지하고요. 그다음 높은 계층이 아시아 인종 등 유색인종이고 아프리카 계열의 흑인종이 하바닥 계층으로 구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법적으로 사회적 계층을 분리하고 서로 어울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남아프리카 국민 중 78% 정도가 흑인종이고요. 10%가 백인이고 나머지는 다른 계열의 유색 인종입니다. 하지만 국가 제도와 예산 대부분은 10%의 백인들만 우대해 편성됐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은 차별당했습니다. 특히 교육 부분에서 백인 아동을 위한 국가 교육 예산이 인구 78%나 차지하는 흑인 아동을 위한 예산보다 10배나 더 많았으니 차별의 심각성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1949년에 다른 인종간 결혼 금지법을 채택함으로써 시작됐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국민등록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에 따라 전 국민을 인종별로 네 부류로 갈라서 등록해 각 부류에 따라서 사회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 교육의 기회, 고용의 기회와 경제적 지위를 다 달리 결정짓게 했습니다. 인종별 구분에 따라 주거지도 결정됐습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3백 5십 만에 달하던 아프리카 흑인계 주민들은 아파르트헤이트 법제에 따라 거주하던 마을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사람들을 피부색과 전통문화에 따라 체계적인 방식으로 차별하는 것은 국제인권 규정에 따라 심각한 인권유린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1970년대부터 남아프리카의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국내외적인 반대 의견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특히 유엔이 나서서 인종분리정책을 그만둘 것을 촉구하며 무역 제재까지 단행했습니다.

반대의견은 국제사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 국민인 흑인들은 부당한 차별에 맞서서 스스로의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이어 나갔습니다. 흑인계 사회단체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은 평화적 시민 저항운동도 전개했고 게릴라전과 같은 형식의 무력 투쟁도 있었습니다. 50년대부터 진행됐던 시민들의 평화적 권리 찾기 운동은 백인 집권당의 강력한 살상과 탄압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70년대는 시민 정부 시설에 대한 폭발 공격도 있었고 이에 대한 정부군의 보복 공격으로 이어지는 등 혼란이 컸습니다. 이런 와중에 수천 여 명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자들이 재판도 거치지 않고 감옥에 수감되는 사건도 많았습니다. 권리를 찾는 운동에서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 흑인 고등학생들도 백인 학생들과 같이 영어교육을 동등하게 받겠다며 교육권을 외치는 시위를 진행하다 중무장한 경찰들에게 수백 명의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하는 남아프리카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987년경이 되면서 집권당인 민족당은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기 위한 비공개 협의를 시작하고,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 관련 법들이 철폐됐습니다.

흑인 대다수 국민들의 평등권을 찾는 긴 투쟁의 역사 속에서 투투 대주교는 남아프리카 교회위원회의 사무총장으로서 피해받는 국민들을 대변하고 후원하며, 유엔과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정신이 높이 인정받아 1984년 투투 대주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투투 대주교는 수상 소감으로 “이 상은 마치 쓰레기처럼 뿌리째 뽑혀서 이리저리 버려졌던 3백 5십만 우리 국민들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희생자들을 위로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살펴보면 직업선택의 자유도, 주거지 이전의 자유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의 현실과 70여 년 전 조부모의 행적이 현재 자손 대까지 영향을 주는 북한의 관행이 겹쳐서 떠오르는데요. 엄청난 인권유린으로 국제사회가 경악하던 아파르트헤이트도 공식적으로 폐기된 지가 이제 30년이 다 됐습니다. 그리고 그 제도에 대항하던 남아프리카 국민들의 정신적 지지자도 이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북한 주민들이 겪는 차별도 이제는 사라져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오중석, 웹팀:김상일